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을 규명하려는 수사와 재판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 전 국정원장 등이 실형을 확정 받았다. 다만 대법원은 수사에 대비해 내부 문건을 비공개ㆍ은닉 처리하고, 대기업들에 보수단체 자금 지원을 요청하도록 지시한 행위는 직권남용죄가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4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남 전 원장과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각각 징역 3년6월과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남 전 원장과 장 전 지검장 등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한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 가짜 심리전단 사무실을 만들어 허위 서류 등을 비치하고, 심리전단 요원들에게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에 대비해 실제와 다른 진술을 하도록 지침을 내리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를 받았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허위임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증거를 조작해 제출한 것으로 이는 위계에 의해 수사기관의 수사행위를 방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재판에서 국정원 위법행위가 드러나지 않도록 위증을 교사한 혐의 역시 유죄로 본 원심 판단이 맞다고 봤다.
하지만 직권남용 혐의는 모두 무죄가 내려졌다. 이들이 감찰실 직원을 시켜 문건 등을 비공개 또는 은닉 조치하게 한 행위에 대해서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 권한에 해당하는 사항에 대해 실무담당자로 하여금 그 직무집행을 보조하게 하더라도 자신의 직무집행으로 귀결될 뿐,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직권을 남용해 삼성과 SK 임직원들에게 보수단체를 지원토록 한 혐의를 받은 남 모 전 국정원 국장에 대해서도 “직권남용 혐의는 공무원이 일반적인 직무ㆍ권한으로 불법을 행사하는 것인데 기업에 보수단체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국정원의 직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 판단을 내렸다. 앞서 1심에선 “직무상 민간기업을 접촉해 협조 요청하는 게 필수불가결하다”고 판단해 죄를 인정한 바 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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