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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분명해진 국민연금… 현대차엔 백기사, 효성엔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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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분명해진 국민연금… 현대차엔 백기사, 효성엔 반대

입력
2019.03.14 18:12
수정
2019.03.14 20:0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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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 강남 사옥. 홍인기 기자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 강남 사옥. 홍인기 기자

‘주주총회장의 종이호랑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를 도입한 이후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전공시를 통해 의결권 결정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당장 현대자동차그룹과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배당 확대를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현대차의 손을 들어주고, 기업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사외이사 선임엔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등 개별 기업의 현안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엘리엇 요구 과해” 현대차 판정승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탁자책임위)는 14일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효성 등의 정기 주주총회 안건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하고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방향은 시장 영향력을 고려해 사후 공개해왔는데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지분율이 10% 이상이거나 국내 주식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비중이 1% 이상인 기업 100여곳의 주총 안건에 대해선 찬반 의결권을 사전 공시하고 있다.

수탁자책임위는 오는 22일 열릴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주총 안건 가운데 회사 측이 제안한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배당) 승인의 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ㆍ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사내이사 재선임의 건 등을 모두 찬성하기로 했다. 정의선 부회장의 기아자동차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 등도 찬성했다.

반면 엘리엇이 현대차 1주당 2만1,967원, 현대모비스 1주당 2만6,399원의 배당을 요구한 주주제안엔 반대하기로 했다. 이는 당초 현대차그룹이 제안한 배당(현대차 1주당 3,000원, 현대모비스 1주당 4,000원)보다 6~7배 많은 수준이어서 과도하다고 봤다. 엘리엇이 현대모비스의 사외이사 후보로 중국 전기차 업체인 카르마 오토모티브의 최고기술경영자(CTO)인 로버트 알렌 크루즈를 사외이사로 추천한 사안 등에 대해서도 기술유출 등의 우려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명확히 했다. 업계 관계자는 “엘리엇 측은 다양성 확보를 주장하지만, (국민연금은) 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침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자본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엘리엇의 고배당 요구에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면서 현대차는 한숨 돌리게 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회사의 미래지속 가능한 성장에 힘을 실어준 결정”이라고 안도했다. 다만 국민연금의 결정에 앞서 국내 대표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배당액이 타당하는 의견을 냈고, 세계적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이미 주주들에게 현대차그룹 측에 표를 던질 것을 권고한 상태여서 국민연금의 결정이 예상된 측면은 있다.

◇목소리 분명해진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사외이사의 의무를 소홀히 한 인사들에 대한 견제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효성은 손병두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의 사외이사 재선임,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을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을 제안했다. 그러나 수탁자책임위는 “이들은 2014년 분식회계 발생 당시 사외이사로서 감시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반대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조현준 효성 회장 등의 지분율을 고려하면 주총에서 이들 후보의 선임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적은데, 외부에서 오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효성 측은 “주주들이 현명히 판단해 주실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국민연금이 주총 전에 의결권 방향을 공개하면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그간 반대 의결권을 행사해도 부결되는 비율은 낮았는데, 사전공시를 통해 찬반의 이유를 명확하게 알리면 실효성이 높아지고 장기적으로 주주이익이 커질 것”이라고 봤다. 반면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위탁운용사나 다른 투자자들이 독립적 결정을 못하고 국민연금의 의견을 따라가 시장이 왜곡될 것”이라며 국민연금의 영향력 강화를 우려했다.

한편 국민연금은 조만간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 이사 연임 안건에 대한 찬반 입장도 사전 공개할 예정이다. 대한항공의 정기 주총은 27일 열린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조 회장 등의 이사직 해임을 직접 제안하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하지 않기로 한 바 있다. 다만 조 회장이 대한항공 이사 재선임 안건을 관철하기 위해 적극적 방어를 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이 찬반 의결권을 미리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주주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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