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발길질하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하면 치매ㆍ파킨슨병 등 신경퇴행질환을 의심해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대병원, 캐나다 맥길대 신경과, 미국 메이요클리닉 등 세계 11개국 24개 센터의 수면ㆍ신경 전문가들이 돌발행동을 보이는 질병인 ‘특발성렘수면행동장애’ 환자를 장기 추적한 결과, 조사 대상자 4명 가운데 3명꼴로 치매ㆍ파킨슨병 등 신경퇴행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 아시아에선 정기영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가 유일하게 공동 연구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브레인’ 최근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수면다원검사로 확진된 특발성렘수면행동장애 환자 1,280명을 장기 추적 관찰했다. 치매ㆍ파킨슨병 발생률ㆍ신경퇴행질환 위험도도 평가했다. 대상자 가운데 한국인은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 환자 28명이 포함됐다. 환자 평균 나이는 66.3세였고 평균 추적관찰 기간은 4.6년, 최장 19년이었다.
연구 결과 특발성렘수면행동장애 환자는 연간 6.3%, 12년 후에는 무려 73.5%가 신경퇴행질환으로 진행됐다. 신경퇴행질환 위험요인으로는 운동 검사 이상, 후각 이상, 경도인지장애, 발기 장애, 운동 증상, 도파민운반체 영상 이상, 색각 이상, 변비, 렘수면무긴장증 소실 등이었다.
특발성렘수면행동장애는 파킨슨병, 루이소체 치매와 다계통위축증 등 신경퇴행질환의 전단계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이 질환으로 진단했을 때 신경퇴행질환으로 이행률과 진행 예측인자를 정확히 추정하면 신경보호를 위한 치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사람은 잠잘 때 꿈을 꾸지 않는 상태인 ‘비(非)렘(REMㆍRepid Eye Movement)수면’과 뇌가 깨어 있으면서 꿈을 꾸는 ‘렘수면’ 상태를 반복한다. 렘수면일 때는 근육이 이완돼 움직이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특발성렘수면행동장애 환자는 근육이 마비되지 않고 긴장돼 꿈속 행동을 그대로 재현하게 된다. 이로 인해 소리를 지르거나 발길질을 하는 등 이상 행동으로 외상을 입는 일이 잦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특발성렘수면행동장애 유병률은 0.38~0.5%이고 한국 고령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2.01%였다.
신경퇴행질환처럼 특발성렘수면행동장애도 완치할 수 있는 약이 없다. 하지만 다른 신경퇴행질환은 치료를 일찍 시작하면 진행을 늦출 수는 있어 특발성렘수면행동장애도 같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기영 교수는 "신경퇴행질환으로 발병될 위험이 높은 환자를 예측해 더 적극적으로 관리하면 이후 환자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며 “기존 연구에서도 특발성렘수면행동장애가 신경퇴행질환으로 진행된다고 알려졌지만, 이를 다기관 장기 추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신경퇴행질환의 다양한 위험인자들을 밝히고, 한국인 환자 데이터도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 것을 확인한 것도 이번 연구의 큰 의의”라고 덧붙였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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