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업무보고, 美 기류 감안한 듯… ‘중재자→촉진자’ 역할 수정
지난달 말 하노이 북미 담판 결렬로 급부상한 비핵화 협상 비관론에 적극 돌파 의지 표명으로 맞서던 정부가 속도 조절에 들어간 모습이다. 북미 입장이 정리될 때까지 당분간 최우선 순위 남북 경제협력 사업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추진을 보류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강경해진 미국 기류를 감안해 오해를 살 법한 행동은 일단 자제하자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13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전날 통일부가 대통령 업무보고 사후 브리핑을 통해 의지를 보인 개성공단 재가동 및 금강산 관광 재개 관련 정부 입장에 대해 “지금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중요한 프라이어리티(우선 사항)인 만큼 시기가 성숙하면 미국과 잘 협조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주요 업무 추진 계획을 언론에 발표하는 자리에서다. 하노이 회담 때 대북 제재 해제 여부가 협상 결렬 배경이 됐던 만큼 굳이 미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거니와 우리 정부가 개입할 여지도 당장은 크지 않다는 상황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노이 회담 뒤 정부가 ‘중재자’에서 ‘촉진자’로 자기 역할을 수정한 것 역시 신중론이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중립적 태도가 수반돼야 하는 중재자 역할이 동맹국인 미국을 서운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 기자들을 만난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앞으로 한국이 어떻게 북미 간 중재 역할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저희는 중재가 아니다”라며 “(중재보다) 촉진 노력을 한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인 듯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소극적 입장으로 돌아선 건 아니다. 이날 공개된 외교부 업무 보고에는 ‘탈미(脫美) 지향’으로 해석 가능할 만큼 자신감을 드러내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북미 양측이 갖고 있는 우리 정상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북미 간 접점 모색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추진”한다든지 “한미 공조를 중심축으로 유지해 나가면서 향후 비핵화 과정에서 우리의 능동적 참여를 지속 확대”한다든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견인하기 위해 밝은 미래를 제시하고 비핵화와 평화 정착 과정에서 우리의 적극적 역할을 지속”한다든지 하는 대목들이다.
“비핵화와 함께 평화체제 및 신뢰 구축 조치를 함께 다루는 포괄적 협의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거나 “비핵화 진전과 연계해 한반도에서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관련국 간 논의를 추진”하겠다는 각오 피력의 행간에는, 지금이 거론될 때가 아닐 뿐 비핵화 편향 논의가 바람직한 게 아니고, 평화체제 전환 논의가 중국이 포함된 ‘다자(多者) 협상’의 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낙관적 상황 평가도 그대로다. 브리핑에서 외교부 당국자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비핵화 및 상응 조치와 관련해 북미 간에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제고됐다”며 “가장 중요한 게 북미 간에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인 만큼 북미 대화가 조속히 재개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단계적 이행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 범위에서 타결할지만 합의한다면 북미 간 접점 찾기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제시한 건 포괄적으로 합의하되 이행은 단계적으로 할 수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라며 “결국 포괄적인 합의와 단계적 이행”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브리핑에서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이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해 경제 보복에 나설 가능성과 관련해 “일본이 우리 정부에 (경제 보복 조치를) 통보해 온 바가 없으며 여기에 대응해서도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미세먼지 대책’에 대해서는 “중국을 상대로 공동예보제라든지, 저감을 공동으로 노력하자는 등 여러 이야기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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