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ㆍ임종헌 “예단 일으킬 기타 사실 나열” 검찰 “기재 불가피” 반박

사법농단 수사를 계기로 법조계에서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검찰이 사법농단에 연루된 다수 전ㆍ현직 법관들을 기소하는 과정에서 공소장에 공소사실과 관계없는 설명과 수식어 등으로 유죄심증을 높여 재판의 공정성을 위배했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현직 법관들 사이에서도 지금껏 관행적으로 눈감아 주던 검찰의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사례들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사가 피고인을 기소할 때 공소장만 법원에 제출하고 다른 서류나 증거물은 첨부ㆍ제출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재판에 임하는 법원이나 법관이 어떤 선입관이나 편견을 갖지 않게 하고 실체적 진실은 공판정에서 당사자의 주장과 물증을 통해 밝혀야 한다는 게 근본 취지다.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이 인정되면 공소를 기각할 수 있지만, 재판 현장에서 실제 기각 사례는 많지 않고 공소장을 변경하는 게 대부분이다.
공소장 일본주의 논란은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문제를 삼으면서 불거졌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대부분 공소사실에 예단을 일으킬 기타 사실을 나열했다”고 주장했고, 임 전 차장 측 역시 “공소장을 읽다 보면 이미 유죄로 귀결된다”고 문제 삼았다. 특히 두 피고인은 특히 검찰이 공소장에 범행 동기와 배경 등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재판부의 예단을 유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사실을 특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범행마다 동기와 배경을 기재하는 게 불가피하다”면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지적을 반박했다.
사법농단 피고인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법원에서도 비판적 시선이 없지 않다. 현직 법관 시절에는 문제 삼지 않다가 피고인이 되자 들고 나온 ‘때 아닌 항변’이라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판사들이 직접 기소돼 공소장을 받아 들어보니 비로소 그간 자신들이 얼마나 무심했는가를 느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법원을 포함한 법조계에서는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사례가 이미 심각하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단순히 ‘무엇 무엇을 했다’고만 적어도 될 것을 ‘피고인이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했다’고 풀어 쓰거나, 조직범죄 사건에서 해당 단체 역사와 함께 그들이 그간 저질러온 다른 범죄를 설명해 유죄 심증을 높이는 식으로 검찰이 접근한다는 것이다. 현직 부장판사는 “재판하다 보면 위반될만한 사례가 많이 발견되지만, 이의제기가 없는 한 특별히 문제 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털어놓았다.
공소장 일반주의가 무너진 재판에서는 피고인과 사건에 대한 예단과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수사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은데, 이를 공소장에 녹이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판사도 사람이라 한 번 형성된 편견을 쉽게 지우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법원 내부에서는 “이 참에 한 번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어디까지를 위반이라 볼 것인지 애매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애매하다고 해서 그냥 둘 게 아니고 계속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판례를 쌓아야 한다”며 “특히 예단을 갖게 하는 증거 내용이 공소장에 인용되는 경우에 대해선 과감하게 기각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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