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디데이(3월 29일)를 불과 2주 앞둔 영국과 세계 경제계 곳곳에서는 “제발 노 딜(합의 없는) 브렉시트만은 막아달라”는 절박한 호소가 줄을 잇고 있다. 세계적 금융 중심지 ‘시티 오브 런던’에 터잡은 금융사들은 이미 1조파운드(1,500조원) 규모의 자산 ‘브렉소더스(영국 탈출)’를 마무리 지은 상태다.
13일 외신에 따르면, 전날 영국 하원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이 부결되자 영국산업연맹(CBI)과 유럽연합(EU) 주재 미국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이 일제히 성명을 내고 우려를 표명했다. 캐롤린 페어베언 CBI 사무총장은 “참을 만큼 참았다. 일자리와 생계가 걸려 있는 문제”라며 브렉시트를 놓고 아무 합의도 이루지 못한 정치권을 비판했다. CBI를 비롯한 업계는 당초 ‘노 딜 브렉시트’를 피하기 위해 합의안의 수용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차선책으로 브렉시트 실행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업계는 점차 가능성이 높아지는 노 딜이 초래할 피해액을 가늠조차 못하고 있다. 노 딜이 현실이 되면 영국-유럽 국경에 세관 절차가 도입되고, 일부 상품에는 관세도 부과될 수 있다. 자연히 영국과 EU간 교역ㆍ투자ㆍ고용 위축이 불가피해 파운드화와 유로화 가치가 동반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선 이미 브렉시트가 현실이 됐다. 런던 금융가에 거점을 두고 유럽지역 사업을 벌이던 금융사가 최근 자산을 대거 EU로 옮겼다. 노 딜 여부와 관계없이 브렉시트 이후에는 EU에서 기존과 동일한 조건으로 영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노 딜 위협을 피하더라도 영국과 EU가 무역협상을 다시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영국 정부가 농업ㆍ어업 등 다른 분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영국 금융산업의 유럽 접근성을 포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런던 소재 싱크탱크 뉴파이낸셜의 11일 보고서에 따르면 런던 금융가 소재 기업 210여개는 이미 유럽에 별도 법인을 설립하거나 신규 사업인가를 받았다. 보고서는 은행이 8,000억파운드, 보험사와 투자기업도 각각 수백억파운드를 유럽으로 옮겨 총 1조파운드(약 1,500조원) 어치 자산이 유럽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산했다. 금융사들이 주로 이동한 장소는 아일랜드 더블린이다. 아일랜드는 브렉시트로 인해 산업ㆍ통상 분야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나마 금융자본을 끌어들여 위안을 삼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역시 브렉시트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11일 발행한 ‘브렉시트 시나리오별 주요국 국내총생산(GDP) 영향’을 통해 노 딜이 실행될 경우 한국 GDP가 2030년까지 0.064%, 8억2,000만달러(약 9,300억원)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국의 영국ㆍEU 27개국에 대한 교역 의존도는 2018년 기준 0.8%, 6.5%라 피해가 제한적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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