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은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으로, 과거·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12일(현지 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3회 국제경쟁정책 워크숍' 기조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세르비아는 2000년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고서 수차례 경제 위기를 극복, 최근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 경제와 공정위의 발전사를 소개하며 발돋움 중인 세르비아 경쟁당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정부 주도 정책'과 '수출 중심 정책' 조합으로 '한국의 기적'을 달성했다고 했다.
그는 "정부는 한정된 자원을 성공적인 기업에 투자했고, 이 기업은 해외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 대기업은 해외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에 참여해 성공했지만 같은 시기에 국내 시장에서는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며 "이 시기에 삼성·현대자동차·LG와 같은 '재벌'이 탄생했다"고 소개했다.
시민단체 활동 시절에 '재벌 저격수'로 불렸던 김 위원장은 이날 "나는 재벌을 좋아한다"며 "재벌은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으로,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전제했다.
하지만 재벌은 독점적 지위에 따라 문제를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막강한 경제 권력은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정치, 종교, 언론, 이데올로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초기 자본을 제공했던 '오너 일가'의 보유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는 오너 일가가 지분 대부분을 보유했지만 현재는 5% 내외에 불과하다"며 "오너라 불리지만 실상은 소수주주"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순환출자 등을 이용해 기업집단 전체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다른 기업·주주의 이익을 저해하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의 경제 발전 단계에 따른 공정위의 대응을 소개했다.
그는 "공정위 설립 초기에는 조직 규모도 작고 경험도 충분치 않아 법집행보다는 경쟁 주창 기능에 중점을 뒀다"며 "하지만 경쟁정책 필요성이 높아진 후 활동 방향은 경쟁법 집행으로 옮겨갔다"고 설명했다.
또 "이후 점차 경제분석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경쟁제한적 기업결합 규제 등으로 확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경제 발전 초기 단계에서는 기업법과 상법 등 다양한 법제 간 조율 시스템이 작동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에 따라 과거 한국은 경쟁 당국이 경쟁법 집행뿐 아니라 재벌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임무를 맡아야 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은 정부주도 경제에서 출발해 시장경제를 꽃피우는 모범사례를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였고 이 과정에서 공정위와 공정거래법이 역할을 했다"며 "세르비아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김 위원장은 영어로 진행한 강연에서 재벌 비판 기조는 유지했지만, 실무자가 쓴 초고에 담겨 논란이 된 '사회적 병리현상'과 같은 표현은 쓰지 않았다.
강연 후 공정위 성경제 입찰담합조사과장은 담합 과징금 감면제도를, 김문식 부당지원감시과장은 공정위와 다른 정부기관과의 협력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강연을 요청한 밀로에 오브라도비치 세르비아 경쟁보호위원장은 한국 기자들과 만나 "세르비아는 (한국과 같이) 단계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며 "세르비아 경쟁당국으로서 시장 경제의 역할과 법 집행에서 많은 점을 배울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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