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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 베트남] 설 연휴 끝나도 사찰 가고 점집 찾아... 음력 1월 생산성은 뚝

입력
2019.03.14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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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음력 1월 한달이 ‘설’

그림1 정월 대보름이던 지난달 19일 하노이 시내 사찰, ‘푸 타이호’를 찾은 시민들이 올 한해 가족 건강, 복 등을 기원하고 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그림1 정월 대보름이던 지난달 19일 하노이 시내 사찰, ‘푸 타이호’를 찾은 시민들이 올 한해 가족 건강, 복 등을 기원하고 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장장 9일간의 뗏(설) 연휴를 끝내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업무에 복귀한 지난달 11일. 이날 오전 응우옌 쑤언 푹 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푹 총리는 연휴기간 운수, 치안, 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에게 노고를 치하하는 것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그러다 중간에 짤막했지만, ‘강력한’ 지시를 전국의 공무원들과 관계기관에 하달했다. “업무 시간에 축제나 종교행사에 가지 말고, 관용차를 업무 외 다른 용도로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 “업무시간에 딴 짓 말라” 

오랜 연휴를 마치고 복귀한 공무원들의 근무 기강 확립을 위한 주문이긴 했지만, 올해만큼은 그 대목에 좀 더 힘이 들어간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매체 한 중견 기자는 “개혁 개방정책인 도이머이(쇄신)의 성과가 견조한 경제 성장으로 나오고 있지만 공공부문의 이 같은 구태를 고치지 않고선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이를 통해 민간 부문의 생산성도 견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베트남 직장인들의 느슨한 행태는 곳곳에서 목격된다. 지난달 19일 오후 찾은 하노이 서호변의 ‘푸 타이호’ 사찰의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평일인데도 적지 않은 수의 공공부문 종사자가 관찰됐다. 아예 소속 회사 배지를 달고 이곳 절을 찾은 이들도 이었다. 시내 한 은행 지점에서 근무한다고 밝힌 쩐 투 쩡(38)씨는 “모든 직원들이 근처 사찰을 찾아 올 한해 행운과 건강, 회사의 발전을 기원하기로 했다”며 “부서장급들은 오전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모든 직원이 나오면 손님은 누가 맞느냐는 질문에 “뗏 이후 음력 1월에는 이해를 해준다”고 말했다.

쩡씨와 같은 직장인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몰리면서 ‘푸 타이호’로 가는 길은 차에서 내려 걸어야 할 정도로 붐볐다. 정월 대보름을 맞아 각종 음식을 파는 식당들과 기념품 가게, 점집도 대목을 맞아 분주했다. 경내에서 만난 유제품 업체 직원 호앙 남 썬(42))씨는 “내가 아는 대부분 사람들이 이 시기 절을 찾아 기도를 하고, 많은 회사들이 휴업한다”며 “뗏 연휴를 마치고도 음력 1월 한달 동안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고 말했다. 다만 푹 총리의 지시 때문인지, 질서 유지를 위해 나온 공안 외 공무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외교가 관계자는 “정부는 기본적으로 사회변화를 관이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성 떨어지는 베트남 1월 

긴 연휴를 마치고도 직원들이 정상적인 업무에 복귀하지 못해 연출되는 이 시기 어수선한 분위기에 대해 많은 외국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호찌민시에 사무실을 둔 외국계 금융회사의 인도 출신 최고경영자(CEO) 아뚤 디싯(47)씨는 “뗏 전후, 특히 연휴 이후 직원들의 외근이 잦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업무에 큰 타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서는 뗏 한달 전부터 선물 구입, 거래처 인사 등으로 길거리가 복잡해지며, 새해 맞이 장식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뗏 이후에는 각 종교활동, 새해 인사 등으로 그 같은 분위기가 이어진다.

뗏 이후 제조업체들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연휴 전에 뗏 보너스와 함께 2개월치의 월급을 받은 이들이 회사로 복귀하지 않는 경우다. 호찌민시 인근 롱안성의 한 공단 내 봉제공장 관계자는 “최근에는 그 비율이 줄었지만, 몇 년 전까지는 뗏만 지나고 나면 직원들이 20%씩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숙련된 이들까지 빠져나갈 경우 생산과 품질유지에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뗏 기간 회사를 그만 둔 이들은 주로 보다 높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가는 경우가 많다. 법무법인 광장의 베트남 전문, 한윤준 변호사는 “10년 전만 해도 귀경 근로자들의 복귀 비율이 70%밖에 안됐다”며 “여성들의 경우 결혼 등의 이유로 고향에 잡히는 경우도 종종 보고됐다”고 말했다.

업무 시간 중 외출이 힘든, 자리를 비우기 힘든 생산직 근로자들의 경우 공장 한 켠에 상을 따로 차리고 돌아가면서 분향, 예를 올리는 것으로 대체된다.

한 젊은 커플이 하노이 시내 한 노상 점집을 찾아 상담하고 있다.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베트남이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이들이 이 같은 수단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한 젊은 커플이 하노이 시내 한 노상 점집을 찾아 상담하고 있다.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베트남이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이들이 이 같은 수단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경제성장과 전통문화의 충돌 

음력 설을 전후해 지휘와 업종을 막론하고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제기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종교, 토속 신앙이다. 하노이 주부 응우옌 투 항(45)씨는 “남편 회사는 1박 2일로 종교 투어를 갔다. 새해 사업 성공을 기원하는 일이다. 베트남의 많은 기업들이 하는 행사”라고 말했다.

연 평균 7% 가까운 고속 성장을 하고 있고, 그에 맞춰 다양한 문화들이 유입되고 있는 베트남이지만, 미신에 의지해 각종 의사를 결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관찰된다. 부동산 등 각종 계약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미국계 법무법인 베이커 맥킨지의 김유호 변호사는 “부동산 계약서 서명을 하는 데 있어 특정 시간과 장소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사업이 번창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한번은 약속시간에 늦어 계약이 파기될 뻔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젊은이들도 일부이긴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길일을 받아 소개팅에 나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풍수 자문, 행운석 제작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대표 푸엉(28)씨는 “월 200명 손님 중 20~30%가 20대 젊은 고객이다. 데이트 날짜, 성형수술 날짜 시간까지도 이곳에서 받아간다. 젊은 고객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업체가 지난해 베트남의 패션전문지 ‘허 월드’(HER WORLD)가 선정한 ‘젊은이들에게 영향력 높은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걸 감안하면, 베트남 사회의 이런 풍속은 상당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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