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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가볍지만 착한 지출엔 기꺼이… 청년들의 ‘소신 소비’

입력
2019.03.16 09:0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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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성비 따지지만 가심비가 더 중요” 의미있는 굿즈ㆍ기부엔 돈 안 아껴 

유기묘, 유기견 돕기를 비롯한 각종 기부 프로젝트에서 구입한 스티커와 배지. 이원호씨 제공
유기묘, 유기견 돕기를 비롯한 각종 기부 프로젝트에서 구입한 스티커와 배지. 이원호씨 제공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가 지갑을 여는 문법은 남다르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듯하다가도, 돌연 값이 더 비싸도 ‘착한 물건’을 집어 든다. ‘1+1’을 찾아 헤매는 줄 알았는데, 문득 기부와 크라우드펀딩(주로 온라인에서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방식)에 나름의 거금을 내기도 한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대체할 단어, 가심비(價心比ㆍ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이러한 소비를 추동하는 건 ‘충동’이 아니다.

트렌드 분석가들은 이들의 새로운 계산법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가 ‘소신’에 있다고 본다. 자신의 소신을 조용히 내면에 품기보다 적극적으로 표출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소비는 더없이 좋은 자기표현의 수단이다.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도 자신의 소신을 위해 돈을 쓰는 ‘소신 소비’에 나선 이들은 용돈을 받아 쓰는 대학생부터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까지 다양하다.

소신 소비의 대표적 예는 착한 굿즈(goodsㆍ애호가용 상품) 구입이다. 1년 차 회사원 강민수(26)씨는 최근 김복동 할머니의 사망으로 다시 한번 마리몬드(Marymond)를 방문했다. 김복동 할머니 관련 디자인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마리몬드는 영업 이익의 절반 이상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을 위해 기부하는 생활용품 브랜드다. 강씨는 대학 시절 위안부 문제를 공부하며 위안부를 알리기 위한 팔찌를 직접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마리몬드라는 브랜드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강씨는 “휴대폰 케이스나 가방 등 관련 물건이 필요할 때면 자연스럽게 다른 곳보다 애착이 가는 브랜드를 찾는다”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소신 지출’도 있다. 착한 스토리펀딩, 크라우드펀딩으로 사는 각종 굿즈가 대표적이다. 대학생 이원호(24)씨는 매주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tumblebug) 홈페이지에 들어가 유기묘ㆍ유기견을 돕는 프로젝트를 살펴본다. 2년 전 임시 보호하던 새끼 고양이의 죽음을 경험하면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학교 커뮤니티에서 쓰레기통에 새끼 고양이가 버려져 있다는 글을 본 뒤 유기묘를 집에서 임시 보호하며 병원에도 데려가 봤지만, 2주 만에 고양이를 떠나보낸 일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아직은 구조의 기회가 있는 다른 유기묘ㆍ유기견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각종 소비와 지출로도 이어졌다. 이씨는 텀블벅에서 스티커나 배지를 구매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다. 대학생에게 매달 2만원 수준의 지출이 적은 편은 아닌 만큼 “돈 낭비”라며 핀잔을 주는 친구들도 있다. 이씨는 “그래도 먹을 걸 덜 먹으면 아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웃어넘긴다.

단체 기부 역시 소신 지출의 일환이다. 취직을 준비하는 강현서(25)씨에게 구매와 기부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강씨는 “소외된 여성을 위한 활동이라면 언제든 지갑을 열게 된다”고 했다. 미혼모를 위한 모금 행사, 위안부 할머니의 장례 부조금에 빠지지 않고 돈을 꺼낸다. 세이브더칠드런이 판매했던 모자 뜨기 키트(장비)는 돈과 재능을 기부하는 지출이었다. 개발도상국 신생아들의 체온을 유지할 털모자 키트를 구매해, 완성된 모자를 재발송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소신 소비는 주로 대학교 동기들과 함께한다. 강씨는 친구들과 학교 열람실에서 공부하다가 총장님이 나눠준 쿠키를 받고 판매 사이트에 방문해 공동으로 구매했다. 포장지에 ‘위캔쿠키’라는 상호명과 미혼모들이 만든다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맛도 좋지만, 그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강씨는 앞으로도 소외된 구성원을 위한 소비를 이어갈 예정이다.

수입이 적을 땐 꾹 참았다가 경제활동을 시작하며 비로소 소신 소비에 발을 들이는 경우도 있다. 박모(5년차 사원)씨는 “수입이 적을 때는 가성비를 생각했지만, 돈이 생기니 저렴한 제품보다 친환경적 제품을 선호하게 됐다”고 말한다.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먼저 사회적 기업 쇼핑몰을 둘러보는 식이다. 하지만 꼭 사회적 기업이 아니더라도, 친환경 행보를 보이는 기업에 호감을 갖게 된다. 스타벅스는 플라스틱 빨대가 논란이 되자 빠르게 종이 빨대로 전환했다. 박씨가 요즘 들어 스타벅스를 즐겨 찾는 이유다. 사람들은 미래 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하자고 한다. 하지만 그는 환경 보호가 비단 미래 세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더 깨끗했으면 좋겠어요.” 박씨는 환경을 생각하는 브랜드를 응원하는 이유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소비에 투영된 새로운 가치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소비는 이제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 이상이다. 이재흔 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들은 자신의 소비나 일상을 SNS로 인증하는 데 익숙한 세대”라며 “소비는 곧 나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소비할 때도 물건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이나 취향을 드러내려 한다는 해석이다. 특히 요즘은 펀딩 문화가 형성되며, 특별한 가치를 담은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나 사회적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이 연구원은 “시간을 내 봉사활동을 하기 힘들어도, 소비 행위만으로도 선행을 할 수 있게 된 점이 이런 소신 소비를 이끄는 매력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희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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