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외교부 의전국장 “김 위원장, 다시 와서 할롱베이 가고 싶다고 해”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은 베트남이 회담 무대로 낙점된 2월 6일부터 회담이 끝난 28일까지, 22일간 베트남 정부를 그야말로 ‘들었다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행사 준비에 필요한 정보들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전 제공받지 못하면서 베트남 정부는 더 큰 압박을 느꼈다. 이 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던 마이 프억 중 베트남 외교부 의전국장이 현지 온라인 매체 VN익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긴박했던 과정을 소개했다.
베트남 정부는 뗏(설, 2월 5일) 1주일 전쯤 베트남에서 2차 북미회담이 개최될 것이라고 들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방문한 다낭이 개최도시가 될 것으로 보고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다낭 준비 중에… 트럼프, 트위터에 “하노이”
하지만 뗏 연휴(2월2~10) 중이던 9일 아침(베트남 현지시간)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개최도시로 ‘하노이’가 결정됐다는 사실을 트위터로 알린 것. 그보다 사흘 전인 6일 트럼프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밝힌 ‘베트남 27~28일 개최’ 사실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하노이 개최 사실을 연휴 기간에 중에(9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된 것도 그렇지만, 북한도 만만치 않았다. 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을 공식 통보 받은 것은 그보다 5일이나 늦는 14일 이었다. 그것도 북미정상회담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방북한 팜 빈 민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이 2박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14일 아침이었다.
그러나 이때도 베트남은 구체적인 일정은 전달 받지 못했고, 김 위원장이 비행기나 기차로 베트남을 찾을 것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북한은 그 이튿날인 15일 “내일(16일) 선발대가 하노이로 갈 것”이라고 통보했고, 다음날 하노이에 도착한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등 선발대가 “김 위원장이 기차로 동당역으로 도착할 것”이라며 역 보수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북한과 베트남 실무팀은 17일 동당역을 함께 점검했다. 김 위원장이 도착하기 불과 9일 전이다.
갑자기 하노이가 개최도시로 확정되면서 베트남 정부의 객실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당시 다낭에 숙소를 예약한 국내외 언론사도 하노이로 방향을 틀어서 예약에 들어갔던 때다.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은 16일 북측에 객실 109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김 위원장을 위한 방이 북측의 요구 수준에 맞지 않아 제외됐다.
김창선 부장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멜리아 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이 김 위원장이 묵기에 적당했지만, 북한 선발대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이튿날인 18일 북한은 멜리아 호텔에 객실 120개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베트남 정부에 ‘김 위원장 숙소’ 사인을 줬다.
하지만 남아 있는 객실이 얼마 없었다. 하노이 시장이 나서서 다른 5성급 호텔들에 “멜리아에 예약한 손님을 받아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하지만 메트로폴 호텔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중 국장은 (우리 요청을 거절하는 것을 보고) “북미 정상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날 수도 있겠구나, 라고 짐작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도착 나흘 전에야 숙소 ‘멜리아’ 확정
22일 레 호아이 쭝 베트남 외교부 차관이 멜리아 호텔 사장에게 직접 전화해 객실 90개를 확보하고서야 멜리아 호텔이 김 위원장의 숙소로 확정됐다. 북한이 김 위원장 숙소로 멜리아를 찍은 지 나흘만, 김 위원장의 베트남 도착 나흘 전이었다.
회담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국립컨벤션센터(NCC)는 북미가 모두 원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 건물이 너무 넓어 적합하지 않다고 했고,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묵는 JW메리어트 호텔과 가까운 곳이라 꺼렸다. 미국 대표단은 베트남 정부 영빈관이 회담장이 될 수 있도록 베트남 정부가 북한을 설득해주기를 바랐지만, 북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빈관은 내부 카펫 교체와 외벽 칠 등 대대적인 공사를 마쳤지만 결국, 북미 정상회담 기간 어떤 용도로도 사용되지 않았다.
북미 대표단이 함께 점검한 오페라하우스는 회담할 장소가 부족했고, 그나마 회담장으로 쓸 수 있을 만한 미러룸은 큰 길을 유리창 하나로 면하고 있어 경호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상에서 빠졌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하노이에 도착한 26일에서야 “27일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찬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미국은 27일 0시 “28일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이 있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중 국장은 “북미 양측이 전체 계획이 아니라 정보를 조금씩 임박해서 줬다”며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대단한 압박이었다”고 말했다.
양 정상이 하노이에 머무는 동안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은 경호에 대한 요구가 엄청났지만, 2017년 다낭을 방문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요청을 했다. 북한은 달랐다. 멜리아 호텔에 김 위원장이 머무는 동안 북한에 전권을 부여해야 했다. 북측의 요청이 없는 한 호텔 직원들도 상부 6개층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은 호텔 20층에 마련한 전용 식당에서 북한 공수 식자재로 조리된 음식을 먹었다.
김 위원장은 응우옌 푸 쫑 베트남 당서기장 겸 국가주석이 지난 1일 마련한 환영 만찬이 끝난 후 베트남 음식과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표시했다. 특히 만찬에서 선보인 공연을 녹화하도록 하고 베트남 예술인들을 평양에 초청할 뜻을 내비쳤다. 중 국장은 “김 위원장이 또 베트남을 다시 방문해 할롱베이를 찾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며 “위원장을 개인적으로 접촉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우호적이고 개방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할롱베이는 김 위원장이 조부 김일성 전 주석이 1964년 베트남 방문 당시 찾았던 곳으로, 지난달 말 북한 수행원들이 사전에 둘러보며 김 위원장의 유람을 준비했다. 하지만 회담이 소득 없이 끝나자 귀국일정을 앞당겼고, 그 과정에서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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