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이 ‘러스트벨트’(쇠락한 중서부 공장지대)를 정권 교체의 열망을 실현할 핵심 타깃으로 설정했다. 2020년 대선후보 지명 전당대회 장소로 러스트벨트의 중심지인 밀워키를 선택했고, 혹시나 있을 역풍 차단과 대선 기간 정치적 공세의 효과를 감안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전통적 표밭이었지만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던 이 지역에서의 승부가 내년 대선 결과를 좌우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톰 페레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의장은 11일(현지시간) “내년 대선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7월 13~16일에 개최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민주당은 노동자들을 위한 정당이고 밀워키는 노동자들의 도시”라며 “이번 선택은 우리 정당의 명확한 가치를 반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카고에서 북쪽으로 약 150㎞ 떨어진 밀워키는 대도시권 인구 160만명의 공업도시로 한 때 세계 기계공업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중서부 중공업지역의 쇠락 과정에서 좀처럼 활력을 되찾지 못한다는 평을 듣는 곳이다.
민주당의 전당대회 장소 선택은 그 자체로 대선 승부수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하다.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위스콘신주 유세를 건너뛸 만큼 러스트벨트에서의 승리를 자신했지만, 미네소타주 한 곳을 제외하고 위스콘신ㆍ미시간ㆍ펜실베이니아주 등에서 참패했기 때문이다. “(대선까지 남은) 490일간 중서부가 ‘기회의 벨트’임을 보여주겠다”는 페레스 의장의 말은 대선 승리를 위해 필요한 선거인단 270명 가운데 64명이 걸린 이 지역의 민심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AFP통신은 “민주당이 시카고가 아닌 중서부의 다른 도시를 전당대회 장소로 결정한 건 100여년 만에 처음”이라며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한 러스트벨트의 부동층 유권자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트럼프 대통령 탄핵 추진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도 대선을 의식한 조치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탄핵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국론 분열 가능성을 우려한 뒤 “그(트럼프 대통령)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으며 도덕적ㆍ지적으로 대통령에 부적합하다”고 쏘아붙였다. 탄핵을 추진할 만큼의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추문을 대선 과정에서 충분히 활용하는 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음을 내비친 것이다. 하원 법사위에서 수개월이 걸리는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현실적으로도 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크다. 무엇보다 공화당이 상원의 다수인 상황에서 탄핵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특히 대선 이전에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활동이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해석되면서 분노한 공화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것은 물론 중도층 유권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러스트벨트의 표심을 되찾아오는 데 집중하겠다는 민주당의 대선 전략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민주당 지도부의 움직임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를 얻고 있는 지역에서 역풍을 맞을까 봐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 역시 러스트벨트의 표심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WP는 “지난 대선에서 몰표를 줬던 플로리다ㆍ펜실베이니아ㆍ중서부 지역 투표율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중간선거 참패 이후 인프라 투자를 대거 늘리기로 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과의 초당적 협력을 전제한 것이지만 사실상 러스트벨트를 비롯해 가시적인 경기회복과 민생문제 해결에 목말라 하는 표심을 겨냥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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