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들이 국회 국정조사 종료 후에도 위증을 처벌해야 한다며 관련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ㆍ판매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업체 대표들이 과거 국회에서 위증한 사실이 드러나도 현재로서는 처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2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는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의 조속한 개정 필요성을 국회에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2016년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온 김철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 대표의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될지 몰랐다”는 발언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최근 검찰은 SK케미칼로부터 원료를 받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필러물산 전 대표를 구속 기소한 데 이어 SK케미칼 임원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SK케미칼의 살균제 유해성 인지 가능성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어 김 대표 발언이 위증으로 드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현행 법규상 국정조사가 끝난 뒤에는 위증 사실이 드러나도 고발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국회증언감정법은 국회에서 선서한 증인이 허위 진술을 한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엄히 규정하고 있지만, 고발의 주체를 증인을 조사한 본회의 또는 위원회로 한정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통상 특별위원회는 두세 달 동안 조사를 진행한 뒤 해산하는데, 이후 공소시효(7년) 내에 위증 사실이 드러날 경우 고발할 주체가 남아있지 않아 책임을 묻지 못하는 불합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앞서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에서 위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순실 주치의’ 이임순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도 고발이 늦었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했다. 이 교수 사건 1심은 “고발 기간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고, 고발 기간을 제한하면 조사 자체가 제한돼 국회 자율권을 침해한다”면서 유죄를 선고했지만, 2심 및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활동기간 내에서만 위증죄 고발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국정농단 국조 특위에서도 위증을 했다는 의혹이 잇따랐지만 처벌을 받은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이에 국회에 관련법 개정안이 속속 발의됐지만 1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법을 개정한다고 해도 이미 국정조사가 이뤄진 과거 사건에 소급 적용할 경우 소급입법금지 원칙에 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하지만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직접적인 처벌조항이 아니라 형사소추 절차를 고치는 것에 불과하므로, 아직 공소시효가 남은 사건에도 적용된다는 부칙을 달더라도 소급입법금지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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