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관에 고민 털어놓자 헌병 수사로
해군이 상담 내용을 빌미로 성소수자 색출 작업을 벌였다는 폭로가 나왔다. 성관계의 구체적 내용을 묻는 등 조사 방식도 폭압적이었다는 주장이다. 2017년 개신교도인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육군 내 성소수자 색출을 지시해 논란을 빚은 지 2년 만의 일이다.
군인권센터는 12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군 3명이 지난해부터 군형법 위반 혐의로 해군 헌병과 군 검찰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A씨가 군 생활의 고충을 상담할 수 있도록 부대마다 배치된 민간인 상담관을 찾아가면서 시작됐다. 성소수자인 A씨는 자신의 성적 지향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다 다른 군인과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고백했다. 상담관은 소속 부대 상관에게 보고하자 헌병 수사가 시작됐다.
헌병은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은 A씨 휴대폰을 정밀분석한 뒤 성관계를 맺은 상대방을 추궁했다. 이렇게 찾아낸 B씨의 휴대폰도 압수, C씨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진술도 받아냈디. 수사관들은 아무 설명 없이 C씨를 헌병대로 부른 뒤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사무실에서 “성소수자냐?”라고 큰소리로 질문하면서 휴대폰 제출을 요구했다.
이들을 상대로 한 구체적 조사에서도 인권침해가 연이어 일어났다. 군인권센터는 “수사관들은 동성애자인지 양성애자인자, 언제 성소수자란 것을 알았는지, 성관계 때 체위는 어떠했는지, 사정을 했는지 여부까지 캐물으며 인격을 짓밟았다”며 “심지어 게이 데이팅 앱을 사용해보라고 시킨 뒤 이를 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해군의 이런 수사 행태를 지난해 해군에서 발생한 여군 성폭생 사건과 비교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지난해 두 명의 상관이 연이어 성소수자 여군을 성폭행한 사건에 대해 고등군사법원은 피해자가 적극 저항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며 “이런 사건엔 무죄를 주려 애쓰면서 합의 하 성관계를 가진 이들에겐 동성간이란 이유로 처벌하려는 행태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이어 동성간 성관계 처벌을 규정한 군형법 92조 6항의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 피해자 22명 가운데 5명은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고, 그나마 재판을 피한 이들도 자진 전역 하는 등 각종 불이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해군은 “아직 수사 중이고, 더구나 인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을 성소수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공개한 데 대해 유감”이라며 “군기강 혼란행위에 대해 적법 절차에 따라 수사하고 있음을 밝힌다”고 반박했다.
군인권센터는 해군 해명에 대해 “성소수자의 개인 신상 보호를 위해 비공개 수사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마치 대단한 배려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하며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인해 ‘노출될 수도 있다’며 아웃팅 협박을 가하고 있다”며 “해군 측이 색출 피해자와 관련된 사실을 공개할 경우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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