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에 떠밀려… 정부, 일주일 만에 “축소”→“연장 검토” 말 바꿔
“과도한 조세감면 축소 원칙 후퇴” 공제 의존 조세체계 개편 목소리
국가별 GDP 대비 소득세수 비중/ 강준구 기자

올해 말로 효력이 끝나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을 더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지난주 재천명했던 정부가 불과 일주일 만에 오히려 “제도 연장을 검토 중”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내년 총선을 앞둔 세제 개편의 부담에다, 최근 직장인들의 심상찮은 조세 저항 움직임까지 더해지자 ‘과도한 조세감면 축소’라는 대원칙이 다시 한번 보류된 셈이다.

해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소득공제 축소ㆍ반대’ 갈등은 기형적인 우리나라 조세체계의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무적 판단으로 매번 대의를 그르치기에 앞서, 정부나 국민 모두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축소 방침 일주일 만에 ‘철회’

기획재정부는 11일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올해 말 일몰 종료(폐지)하지 않고, 연장되어야 한다는 대전제 하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신용카드 소득공제처럼 어느 정도 도입 취지가 달성된 제도는 축소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직장인을 중심으로 “사실상 증세다” “만만한 직장인만 턴다” 등 반발 여론이 거세진 데 따른 것이다.

실제 홍 부총리의 발언 이후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은 200건을 넘어섰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연봉 5,000만원 근로자의 세 부담이 최고 50만원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고,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제도를 2022년까지 연장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날 “축소라는 방향도 반드시 정해진 건 아니며, 여러 상황을 봐 최종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정책 방향이 애초 ‘단계적 축소’에서 ‘당분간 현상 유지’로 한층 더 후퇴한 모양새다.

근로소득 수준별 신용카드 – 송정근 기자
◇기형적인 소득세 감면체계

이번 공방은 왜곡된 소득세 과세체계 손질이 얼마나 어려운지 함축해 보여준다. 우리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득세수의 비중(2016년 기준 4.6%)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4%)의 절반에 그친다. 최고세율(2018년 46.2%)은 OECD(2016년 평균 43.9%)보다 높은데도 세수는 훨씬 적은 것이다.

이는 신용카드 등 각종 소득ㆍ세액공제가 지나치게 많아서다. 실제 2017년 근로소득자의 총급여(634조원)에서 근로소득공제(162조원), 인적공제(53조원), 특별공제(72조원)를 거친 과세표준은 347조원으로 절반 가량 줄어든다. 여기에 소득세율을 곱한 1차 소득세수(48조원)에서 추가로 또 교육ㆍ의료비 등 각종 세액공제(13조원)를 빼준다. 결국 최종 소득세수는 35조원에 그친다. 실효세율(총급여에서 최종 납부 세금이 차지한 비중)로 치면 5.5%에 불과하다.

이처럼 한국이 ‘공제 천국’이 된 것은, 역대 정부가 복지 기반을 확충하는 대신 세금을 깎아주는 식으로 대응해왔기 때문이다. 김도균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의 저서 ‘한국 복지자본주의의 역사’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는 1974년 소득세 면세점을 월 소득 1만8,000원에서 5만원으로 인상하는 ‘긴급조치 3호’를 발동하며 세금 감면을 시작했다. 교육ㆍ의료 등 사회보장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 때부터 소득공제가 ‘재정복지’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매년 인적공제와 근로소득공제가 인상됐고, 보험료(76년) 의료ㆍ교육비(77년) 공제가 도입됐다.

이런 흐름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3저 호황’(저유가ㆍ저달러ㆍ저금리)으로 86~89년 크게 늘어난 근로소득세수에 조세저항이 커지자 노태우 정부는 88년 근로소득공제를 인상했고, 89년 근로소득세 20%를 깎아줬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도 각각 금융실명제 실시와 외환위기 충격을 막고자 소득공제를 확대했다. 김도균 연구위원은 저서에서 “우리나라는 그 동안 국가복지의 미흡한 부분을 광범위한 소득공제로 대체해왔다”고 설명했다. 유일하게 박근혜 정부가 2013년 의료ㆍ교육비 등 소득공제 항목을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등 공제구조 손질을 시도했지만, 연말정산 파동이 터지며 미완의 개혁으로 끝났다.

◇이상과 따로 노는 현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신용카드 사용액 중 총급여의 25%를 초과하는 금액을 일정 한도로 과세대상 소득에서 빼주는 제도다. 현금거래가 많은 자영업자의 세원을 포착하기 위해 1999년 일몰 시점이 정해진 ‘한시 제도’로 도입됐다.

2016년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자영업 소득에서 과세당국에 신고한 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88%에 달하는 등 당초 도입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 진작부터 세제 전문가나 정책 담당자들은 대다수가 ‘원상 복구’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매번 반대 여론을 넘지 못하고 계속 생명을 연장하는 중이다. 기재부는 작년에도 일몰기한을 올해 말까지 1년만 연장하며 이번에야말로 축소를 관철하겠다고 전의를 다졌지만, 결국 이번에도 허무하게 뜻을 접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세금에 기반한 복지혜택을 피부로 느껴본 경험이 적고, 정부 재정운용 불신도 커 기존 공제 축소에는 광범위한 조세 저항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보편적 복지를 위해 각종 비과세ㆍ감면 혜택 축소는 필수적”이라며 “정부가 각종 공제를 폐지ㆍ축소할 때 왜 그렇게 하는지, 그 재원으로 무엇을 할지 국민에게 먼저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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