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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혈관 재공급한다지만… 환자 불안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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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혈관 재공급한다지만… 환자 불안 여전

입력
2019.03.11 19:00
수정
2019.03.11 19:2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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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소아 심장 수술에 쓰이는 인공혈관을 독점 공급해온 미국 고어(Gore)사가 국내 공급을 중단한 지 1년6개월여 만에 재공급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심장 수술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국내 선천성 심장병 환아들에게 치료제가 우선 공급되면 다행히 ‘급한 불’은 끄게 된다. 하지만 다국적 제약사ㆍ의료기기업체와 보건당국의 가격 협상 과정에서 애꿎은 환자만 피해를 보는 일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11일 인공혈관 제조업체인 고어사가 심장수술에 필요한 소아용 인공혈관 20개를 즉시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웃도어 의료 소재 ‘고어텍스’로 유명한 고어사는 희귀질환을 가진 심장기형 환아들의 소아심장수술(폰탄수술)에 필요한 인공혈관을 전세계에 독점 공급하는데, 2017년 9월 국내시장에서 철수했다. 일부 병원에서 비축해뒀던 재고가 최근 소진되면서 소아심장수술이 무기한 연기돼 의료계와 환우회, 보건당국이 공급재개를 요청해왔다. 고어사는 이날 공식 입장문에서 “한국에서 대체품이 없는 제품은 제한적으로라도 재공급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내 시장 철수방침을 밝힌 이후 1년6개월여 간 묵묵부답이던 고어사가 ‘긍정 신호’를 보내오면서, 수술을 미뤘던 소아 심장 환아들은 일단 한숨 돌릴 것으로 보인다.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는 “고어 측이 폰탄수술용 인공혈관(18㎜ 등)을 시급히 보내면 당장 수술이 필요한 6명의 환아는 구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공혈관 공급 재개를 위한 정부와 고어사간 가격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어서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식약처와 복지부 실무진의 고어사 미국 방문 날짜는 아직 협의 중이다. 윤태진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외과 교수는 “고어사가 치료재료를 팔아 큰 이윤을 남기는 게 아닌데, 윤리적으로 압박해 공급을 푸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2016년 9월에 식약처에서 고어사를 상대로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실사를 하면서 발생했던 갈등을 먼저 원만하게 풀어야 향후 공급중단 사태가 재발할 위험이 없어지고, 환자들도 안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고어사가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 배경에는 낮은 수가와 국내 품질관리 기준 준수 문제가 있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15년 말 치료재료전문평가위원회를 열고 2016년 인공혈관 치료재료 가격을 일괄 인하했다. 게다가 2016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GMP 갱신 작업까지 함께 진행되면서 고어사로서는 제품을 한국에 계속 공급하는 게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식약처는 실사 당시 갈등 상황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고어사 철수 후 1년 만인 지난해 9월 정부는 인공혈관과 같은 희귀질환 치료재료는 건강보험에서 책정하는 가격의 상한을 높일 수 있도록 고시를 변경했다. 이중규 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치료재료의 경우 가격을 결정할 때 수입원가와 제조원가를 조사해 마진을 더해주는데, 희소ㆍ필수치료재료는 대체 불가능하면 제조국의 유통 가격 기준으로 설정해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사, 의료기기업체들이 환자를 볼모로 가격을 크게 인상하는 선례가 쌓이면 정부의 협상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5월에도 간암치료제인 ‘리피오돌’을 독점 공급하는 프랑스 제약사 게르베코리아가 약가 인상이 되지 않으면 철수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리면서 정부가 약가를 기존보다 3.6배 인상된 19만원으로 올려준 바 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다국적 제약사, 의료기기 업체들이 독과점 횡포를 부리고 있지만 독점 제품의 경우 한 국가의 힘만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워 다른 나라와 공동 대체가 필요하다”며 “5월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이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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