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LG전자, 포스코, 효성, 기아차 등 119개 상장사를 시작으로 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의 막이 올랐다. 삼성전자(20일), 현대차ㆍ삼성바이오로직스(22일), LGㆍSK텔레콤ㆍ셀트리온(26일), SKㆍ한화ㆍ대한항공(27일) 등도 잇따라 주총을 열 계획이다. 올해 주총 최대 이슈는 ‘주주 행동주의’ 투자자와 대기업 오너ㆍ경영진 간 대결이다. 이 과정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의 행보 역시 주목된다.
◇한진 대 강성부펀드 승자는
11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올 주총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기업은 한진칼ㆍ한진이다. 한진그룹은 총수 일가 ‘갑질 논란’ 속에 행동주의 펀드 KCGI(일명 강성부펀드)의 도전을 받고 있다. 강성부펀드는 한진칼에 감사ㆍ이사 선임 및 이사 보수한도 제한 등 안건을 제안했고, 한진에도 같은 맥락의 주주 제안을 한 상태다. 여기에 한진그룹 회장인 조양호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의 이사 연임도 반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강성부펀드 측은 최근 한진칼 지분을 12.01%, 한진 지분을 10.17%까지 늘린 데 이어,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 차명 소유(3.8%)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주총 표 대결의 고삐를 쥐는 모양새다.
한진그룹은 적극 방어 태세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의 이사직을 지키기 위해 회사 안팎에서 주식 의결권을 모으고 있다. 대한항공은 최근 직원들에게 이메일, 방문 등 다양한 경로로 “직원과 가족들이 보유한 대한항공 보통주 의결권을 위임 받아 회사에 우호적인 의결권 행사를 하려 한다”며 위임장 제출을 요청하고 있다. 회사 안팎에선 팀장급 간부들이 우리사주 직원 명단을 들고 해당 직원을 찾아 다니며 위임장 서명을 받거나, 인천공항 2터미널 내 지정 장소에서 비행 스케줄이 있는 승무원을 상대로 위임장을 수령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강요 행위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자 대한항공은 “법령에 따라 일부 직원 주주에게 적법한 방식으로 의결권 위임을 권유한 것뿐”이라며 해명했다.
한진칼은 강성부펀드의 주주제안 자격을 걸고 넘어지면서 주총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채 방어하고 있다. 한진칼은 주식보유 기간 요건을 명시한 상법 제542조의6 제2항에 따라 강성부펀드가 한진칼 지분을 보유한 기간이 6개월 미만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 입장은 달랐다. 6개월 보유 기간 요건을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상법 제363조의2를 근거로 지분 3% 이상을 보유하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고 봤다. 한진칼은 법원 결정에 항고 의사를 밝혔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관련 대법원 판례가 존재하는 만큼 판결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양측의 주총 표 대결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런 까닭에 국민연금의 표심에 눈길이 쏠린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첫 사례로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을 꼽고,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 관련 배임ㆍ횡령의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때 결원으로 본다’는 정관 변경안을 제시, 한진 일가를 압박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2대 주주(11.56%)이자 한진칼의 3대 주주(7.34%)다.
◇8조 배당 압박 받는 현대차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주주권 행사로 주목 받고 있다. 엘리엇은 현대차(2.9%)와 현대모비스(2.6%)에 총 8조3,000억원에 달하는 배당을 요구하고 있으며 각각 3명과 2명의 사외이사 선임안도 제시한 상태다.
엘리엇은 현대차에 보통주 1주당 2만1,967원, 우선주 1주당 2만2,017원을 배당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총액으로 계산하면 약 5조8,400억원 규모다. 이는 현대차가 계획하고 있는 배당(보통주 1주당 3,000원, 우선주 1주당 3,050원씩 총 8,000여억원)의 7배가 넘는 수치다. 현대차는 2015년 이후 매년 같은 규모의 결산배당을 실시해오고 있다.
엘리엇은 현대차가 보유 현금을 최대한 풀어 배당에 나서라고 압박하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달 28일 다른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하면서 “작년 현대차 순현금자산은 14조3,000억원으로 경쟁업체보다 8조~10조원 많다”며 “초과자본을 환원하지 않은 채 미래주주환원을 위해 현금을 비축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엘리엇의 배당 요구 및 사외이사 선임 주주제안을 반대하고 있어, 이번 주총에서 표 대결이 예상된다. 현대차의 경우 50%가 넘는 외국인 주주 구성과 국민연금(현대차 8.7%, 현대모비스 9.5%)의 지분 보유로 현대차와 엘리엇 간 대결 결과를 쉽게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주 5배 늘어난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앞선 기업들과 달리 주주총회 당일이 ‘비상’이다. 무엇보다 작년 말 기준 삼성전자의 실질주주(78만8,000여명ㆍ한국예탁결제원 집계)가 1년 전(15만8,000여명)보다 5배 가량 급증했다는 점이 걱정이다. 이는 작년 1월 말 발표한 50대 1 비율의 주식 액면분할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올해 주총을 잠실실내체육관 등 대형 행사장을 빌려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도 했지만, 과거 주총과의 일관성과 교통편의 등을 고려해 작년과 같은 서초사옥으로 최종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작년 400여개였던 좌석 수를 2배 이상 늘리는 동시에 메인 주총장 옆에 마련된 주주 좌석에 쌍방향 중계가 가능한 설비를 갖추 대응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액면분할에 따라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주들의 불만이 커진 것도 이번 삼성전자 주총 관전 포인트다. 액면분할이 적용된 작년 4월 말 5만3,000원대였던 주가는 올해 1월에 들어서 3만6,000대까지 떨어졌다. 이후 4만3,000원대로 다소 회복했지만 액면분할 직전과 비교하면 무려 18%나 떨어진 수치다.
실제 최근 들어 주총 담당인 IR 부서에 주가 하락에 대해 강한 어조로 항의하는 주주들이 늘고 있어, 이들이 주총장에서 회의 진행을 방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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