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서울 성수동 한강사업본부에서 출발한 차량이 강변북로로 접어들기 직전, 운전자는 운전대에 있는 ‘자율주행 모드 ON’ 스위치를 누르고 운전대와 가속ㆍ제동장치에서 손발을 모두 뗐다. 자율주행차는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는 차량들의 움직임을 살펴가며 자연스러운 속도로 차선에 합류했다. 제한 속도 시속 80㎞ 표지판을 인지해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두컴컴한 터널도 문제 없이 통과했고, 월요일 오전 몰려든 차량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사이에서 차선을 변경하고 끼어드는 것도 문제 없었다. 영동대교와 올림픽대로, 성수대교를 차례로 지나 목적지인 성수동 뚝섬 주차장에 도착하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라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복잡한 서울 도로에서 한강 다리를 넘나들며 8㎞ 구간을 운전자의 어떤 개입도, 주변 통제도 없이 이동한 이번 자율주행은 처음으로 시험망이 아닌 상용 5세대(5G) 통신 기지국과 신호를 주고 받으며 달린 최초의 5G 기반 자율주행이었다.
11일 한양대학교 자동차전자제어연구실 ‘ACE 랩’과 LG유플러스는 한양대 서울캠퍼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5G 자율주행 기술을 공개 시연했다. 약 25분 동안 이어진 자율주행 동안 차 내부의 모습이 5G를 타고 간담회장으로 실시간 중계됐다.
ACE 랩을 이끌고 있는 선우명호 교수는 “기존 자율주행 기술은 신호등 같은 교통 정보를 카메라로 인지해야 했지만 5G가 도입되면 실시간 통신으로 정보를 받아볼 수 있어 보다 확실하고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다”며 “5G의 초저지연 특성으로 주변 차량과 정보를 즉각 주고 받을 수 있으며, 최대 10m의 실시간 위치 오차가 발생하는 GPS보다 훨씬 정확한 정밀 위치 측정도 가능해 진다”고 설명했다.
이날 시연에서 성수대교 북단에 들어선 자율주행차는 주변 도로 상황을 인지하고 스스로 경로를 변경하기도 했다. 관제센터에서 5G 망을 통해 목적지 주변에 사고가 났다는 정보를 전달하자, 목적지를 서울숲 북측 입구에서 동쪽 입구로 바꿔 주행했다. 강종오 LG유플러스 미래기술담당은 “5G는 자율주행차에 부착돼 주변 환경 정보를 수집하는 센서(감지기), 차량과 주변 사물을 연결하는 차량사물통신(V2X), 정밀 위치 측정, 정밀 지도 배포 등에 반드시 필요한 ‘킬러 기술’”이라고 말했다.
해외보다 5G 상용망 구축 속도가 빨라 공개 시연에 성공하는 성과를 얻었지만 해외 기업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한 측면이 많다. 구글 자회사 웨이모는 이미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무인 택시 시범 영업을 시작했고, 자율주행 사업을 위해 피아트 크라이슬러 자동차 6만2,000대를 주문하기도 했다. 중국 바이두는 내년 자율주행 자동차 양산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기술 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국내 규제 환경에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선우명호 교수는 “기술적으로만 보면 우리도 1~2년 안에 상용화가 가능하지만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 경쟁력을 가지려면 훨씬 많은 자율주행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바이두는 데이터 확보를 위해 시범운행에 차량 2,000대를 투입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자율주행 허가를 받는 절차가 까다로워 허가증을 받은 차량이 60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선우 교수는 “자율주행 알고리즘에 방대한 데이터가 입력돼 신뢰도를 높여야 하는데 2,000대가 돌아다니면서 수집하는 데이터와는 품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연구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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