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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영향을 주는 관계’ VS ’걸려 있는 관계‘

입력
2019.03.1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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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특유의 넓은 오지랖 때문에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썼다. 매번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는 못했지만 같이 고민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음을 경험하면서 경청(傾聽)의 힘을 느끼기도 했다. 그때 나를 당혹하게 했던 경험 하나.

A(여성)는 B(남성)를 많이 좋아했다. 하지만 짝사랑이었다는 게 함정. 나는 A, B 둘 다와 친했다. A는 나에게 B에 대한 격정적인 감정을 토로하며 힘들어했다. B 역시 내게 고민을 얘기했는데, 그에게 A에 대한 부분은 안중에도 없었다. B는 자신의 진로문제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고, A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제대로 알지도 못했으며, 기본적으로 그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했다. A만 B에게 일방적으로 마음을 쓰고 있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웠고, A에 무심한 B에게 괜히 화도 났었다.

사람 사이에 이런 ‘불평등한 감정의 대차대조표’는 꼭 남녀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 읽었던 책 ‘행복은 전염된다’(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제임스 파울러 공저) 중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니컬러스와 제임스가 친구라고 가정하자. 제임스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는 ‘니컬러스’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니컬러스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댔다면, 이것은 니컬러스와 제임스는 친구이긴 하지만, 니컬러스가 제임스에게 받는 영향보다는 제임스가 니컬러스에게 받는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니컬러스와 제임스가 서로 상대방의 이름을 댄다면, 한 사람만 상대방의 이름을 대는 경우보다 두 사람은 더 가까운 사이일 것이다. 이런 사이야말로 서로 영향을 가장 많이 주고받는 상호 절친 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전에 어느 분이 강의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Link(연결되다)’와 ‘Hang(걸리다, 매달리다)’으로 구분해서 설명했는데, 참 인상 깊었다. 두 사람이 서로 대등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면 이는 Link라 할 수 있으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고 종속되어 있는 관계라면 이는 Hang에 불과하다는 것.

업무차 회의를 진행하면서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제가 그 사람(A)과 참 친합니다”라며 자신을 과시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그 뒤에 A를 만나 정말 그 사람과 친한지 물어 보면 “허허, 참. 그냥 두어 번 만났던 것이 전부인데...”라며 전혀 엉뚱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정말 본인이 A와 친하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단순 허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본인이 A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A의 반응이 이렇다면 이는 Hang 관계를 Link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비즈니스 미팅을 하면서 명함을 주고받는다. 너무도 많은 명함이 쌓이기에 이를 전문적으로 관리해 주는 회사가 엄청난 투자를 받고 업계 유망 회사로 평가될 정도로 우리는 전투적(?)으로 많은 관계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그런 관계들이 때로는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수(Number)만 늘릴 것이 아니라 관계의 질(Quality)을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때 두 사람의 관계는 진정한 ‘Link’가 될 수 있을진대,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매력적인 인격, 좋은 콘텐츠와 폭넓은 인사이트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단순한 명함 수집가에 그칠 뿐이다.

과연 내 주위 많은 이들과의 관계 중 Link와 Hang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그리고 Hang인 관계를 어떻게 Link로 발전시켜 갈 것인지 찬찬히 따져 볼 일이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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