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 직무를 시작한 1933년 3월 미국 경제는 한마디로 만신창이였다. 불황과 실업 사태는 장기화 조짐을 보였고, 은행 등 신용ㆍ금융시스템도 마비돼 갔다. 전임 공화당 후버 정권은 대공황의 불길을 거의 진화하지 못한 채 정권을 넘겼다. 의회가 취임 첫 100일간 신임 대통령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승인한 것도 그만큼 절박해서였다. 루스벨트의 충격적인 첫 조치 중 하나가 ‘긴급은행법’이었다.
주말인 4일 취임한 그는 새로 시작하는 한 주 동안 모든 연방준비제도 가맹 은행의 영업 중단(bank holiday) 조치를 내렸다. 그런 뒤 재무건전성 보장과 예금보험공사 설립을 통한 은행 파산 방지를 골자로 한 저 법을 9일 의회에 제출해 당일 승인받았다. 은행이 새로 문을 열기 하루 전인 12일 저녁, 그는 라디오 전국방송을 통해 금융 위기와 달라진 은행에 대해, 위기에 맞서는 국민들의 용기와 선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렵고 딱딱한 경제ㆍ행정 용어 없이 서민의 일상 언어로, 최대한 편하고 비공식적인 어조로 이어진 그의 담화는 국민들을 진정시키는 데 큰 효과를 발휘, 새 영업일 ‘뱅크런(bank –run)’의 우려를 성공적으로 잠재웠다.
미국의 금융-신용시스템이 그렇게 살아났고, ‘노변정담(爐邊情談, Fireside Chats)’이라 불리는 그의 라디오 담화가 그렇게 시작됐다. 화롯가가 아닌 백악관 집무실이었고 ‘정담(情談)’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그는 ‘뉴딜정책’의 개별적 내용 못지 않게 당시 시민들이 정부에 원한 것, 즉 안정과 신뢰와 희망을 저 형식으로 전달했다. 그의 공보비서관(Stephen Early)이 아이디어를 냈고, CBS의 한 언론인(Harry Butcher)이 두 달 뒤의 두 번째 담화(뉴딜프로그램의 개요)에 ‘Fireside Chats’이란 표현을 처음 썼다.
루스벨트는, 공황에 이은 2차대전 때문에 미국 대통령으론 유일하게 4차례 연임했다. 그는 재임 중 총 30차례 라디오 대국민담화를 발표했고, 평균 청취율은 평시 18%, 전시 58%에 달했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