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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통령 혼자 풀 수 없는 규제

입력
2019.03.1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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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에 대한 시각을 놓고 굳이 편가르기를 한다면, 전통적으로 규제 완화를 외치는 쪽은 보수, 무분별한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쪽은 진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일단 집권을 하면 이런 구분은 의미가 없어진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라고 지시했고, 정부는 수도권에 공장을 신축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시행령을 개정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경기 파주시 LG디스플레이(당시 LG필립스LDC) 공장이다.

이명박 대통령 하면 ‘전봇대’가 떠오른다. 2008년 1월 당선인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 회의에서 목포 대불공단의 전봇대를 언급하며 규제를 공격했다. 대형 트럭이 오가는 길목에 전봇대가 있어 위험하다고 기업들이 수개월째 민원을 냈지만, 개선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MB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겠다고 하자 3일 만에 전봇대는 뽑혔다.

규제와 관련된 박근혜 대통령의 연관 단어는 ‘손톱 밑 가시’다. 2013년 인수위 회의에서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거창한 정책보다 손톱 끝에 박힌 가시를 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를 ‘암 덩어리’에 비유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가. 그는 지난해 영국의 ‘붉은 깃발법’을 예로 들며 규제 혁신을 강조했다. 19세기 영국은 세계 최초로 증기자동차를 상용화했지만, 마차운송업자들의 입김으로 ‘붉은 깃발법’이 만들어졌다.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기 위해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도록 해 속도를 규제했다. 이 법은 당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후발주자였던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게 한 대표적 규제로 꼽힌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이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규제 완화를 외치는 것은 표와 직결되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규제가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행된 ‘규제 샌드박스’(새로운 제품ㆍ서비스가 출시될 때 기존 규제를 일정 기간 면제ㆍ유예해주는 제도)는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규제 방식으로 평가 받는다. 법이 허용하는 것 외에 모든 걸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법으로 금지한 것을 제외한 모든 걸 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로 근본 시스템이 바뀌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받는다.

그런데도 경제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정부의 ‘제2 벤처 붐 확산 전략’에 대해 벤처 1세대인 이재웅 쏘카 대표는 “정부가 규제 개혁에 좀 더 집중하면 ‘2의 벤처 붐’은 만들지 않아도 온다”고 지적했다.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정말 움직여야 하는 건 국회다. 규제라는 게 본질적으로 법률의 형태로 만들어지는데 법을 만드는 권한은 국회에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의 최고권력자가 저마다 강한 의지를 갖고 관료들을 채근하는데도, 규제 개혁이 흐지부지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가 시행령 몇 줄을 고쳐 규제를 푸는 것은 한계가 있다.

법이 만들어지면 그걸로 보호 받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본질적으로 규제는 이해 관계 조정의 정치적 산물이기 때문에 풀기 어려운 숙제다. 차량ㆍ숙박 공유 서비스, 원격 의료를 둘러싼 업계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규제 개혁은 세밀하게 설계돼야 한다. 규제를 없애면 막연하게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 대신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를 갖고 규제를 바꾸려는지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규제를 풀어 신산업을 허용한다면,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옛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보도 논의하고 설득해야 한다.

대통령 한 사람의 결단과 노력으로 멋지게 완성되는 규제 개혁은 없다. 결국 국회의 신속한 논의와 타협이 필요하다. 규제 개혁으로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면 여당은 야당을 이해시키고, 야당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신산업과 관련된 규제라도 풀도록 협조해야 한다.

한준규 산업부장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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