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법 전문가’ 김영철 변호사
2011년은 예술과 법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해였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의 죽음이 계기였다. 무명 작가였던 최씨는“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쪽지를 이웃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수입이 없어 끼니를 제 때 챙기지 못했고 질병도 치료할 수 없었다. 그 전까지 법을 예술을 제약하는 존재로 봤던 문화예술계에서 ‘법을 통한 예술가의 지위 보장과 삶의 보호’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해 10월에는 ‘예술인 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김영철(60) 법무법인 정세 대표 변호사는 이듬해인 2012년부터 ‘미술법 전문가’로 첫 발을 뗐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까지 지낸 형사 전문가다. 미술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 대한 동경이 커져 가는 시기에 최씨 사례를 맞닥뜨리고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서울대 미술대학원에서 7년 간 ‘미술문화 관련법’을 가르치며 미술과 법을 접목했고, 최근엔 국ㆍ내외 미술 사건과 이론을 다룬 ‘법, 미술을 품다’라는 책을 써 냈다. 7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_어쩌다 미술에 이토록 빠졌나.
“일종의 ‘피내림’이다. 나와 누나는 어릴 때부터 미술가를 동경해왔다. 누나는 홍익대에 진학해 미술을 전공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남자는 법을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이기긴 힘들었다. 열심히 공부해 법학과에 진학했지만, 인근 미대 건물에서 오고 가는 학생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사법고시에 통과하고 바쁜 와중에도 미술은 내 안식처가 돼 줬다. 광주지검 목포지청에서 일할 땐 시간 날 때마다 화랑을 찾아 다녔다.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요즘도 의뢰인을 만나려 교도소에 다녀 오는 날이면 미술관에 들르곤 한다.”
_미술과 법을 접목하게 된 계기는 뭔가.
“2010년 서울대미술관의 지도자 과정 중 하나인 예술문화과정(ACP)을 들은 게 이야기의 시작이다. 미술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과정을 열정적으로 들었더니 이듬해 서울대 미술대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미술법을 강의해 달라는 거였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형사 실무를 가르치고 있던 터라 부담이 적지 않았지만, 미술과 법의 관계를 다룰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최고은씨의 죽음으로 사회적으로 예술과 법에 대한 관심도 커져 있었다. 그래서 2012년부터 ‘미술문화관련법’을 시작했고, 매년 2학기에 강의를 한다.”
_이상을 좇는 예술과 지극히 현실을 다루는 법을 한 그릇에 담긴 쉽지 않아 보인다.
“‘법과 예술이 만나면 서로 피하는 게 최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예술은 자유를 좇는 반면, 법은 구속성을 띠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강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미술법’이란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이유다.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엔 국가가 문학과 미술품의 비판적 기능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법을 사용했다면, 현재는 예술인 스스로의 삶을 보호하는 데 법이 꼭 필요하다. 어디까지를 예술가로 인정할 것인가, 복지 측면에서 보호해야 할 예술가는 어떤 이들인가 등 문제가 모두 법과 얽혀있다. 예술 시장이 커지면서 불거지는 작품 진위 논란부터 저작권과 보험, 세금 문제 역시 예술과 법이 만나는 지점들이다.”
_요새 화랑들은 미술품 현금영수증 의무화(올해부터 실행)나 화랑 등록제 도입 시도에 큰 우려를 표한다.
“현금영수증 의무 발행은 정말로 업계에 불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변호사 수임료도 3년 전쯤 현금영수증 의무화 대상이 됐다. 처음엔 반발도 있었으나 지금 보면 되레 변호사나 의뢰인 모두에게 속 편한 제도다. 투명성이 강조되면 컬렉터들이 당당하게 미술품을 구입할 수 있고, 투자도 활성화될 거다. 화랑들이 일정 조건을 갖춰 기관에 등록을 하도록 하는 등록제는 정부 개입 여지가 너무 커지는 게 맹점이라고 본다. 자율 경쟁에 맡기는 편이 낫다.”
_예술가들은 여전히 먹고 사는 게 힘겹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 참여 예술가 13만1,332명의 수입이 연평균 1,255만원에 그쳤다. 수입이 아예 없다는 응답자도 36.1%나 됐다. 예술인이라고 무조건 보호하고 지원할 순 없겠지만, 현장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규제는 가급적 최소화하고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예술가들도 그저 지원에 기대고 있어선 안 된다. 예술가 중 많은 이들이 예술이 아닌 현실적 문제를 고민하는 걸 부끄러워 하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예술 활동 기록을 비롯한 지원 근거를 쌓고, 법 공부를 해서 스스로를 보호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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