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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검사를 진행해도 될까요?

입력
2019.03.1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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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의 응급실은 분주했다. 이마에 생채기가 난 할아버지가 수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들어왔다. 누군가 길에서 주정 부리던 할아버지를 신고한 모양이었다. 술 냄새가 났고 표정이 조금 풀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붐비는 환자들 사이에서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의 이마에서 깊지 않은 상처를 확인했다. 영상검사를 진행하고 간단한 봉합만 하면 될 것 같았다. 환자에게 CT 촬영 후 봉합을 권유했다. 그는 취한 기색으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돈이 없는 사람이고 이렇게 멀쩡한데, 무슨 장삿속으로 검사를 하냐는 것이었다. 취기에 말을 조금 심하게 하는 것 같았다.

봉합이야 간단했으나 할아버지를 이대로 혼자 귀가시키기에는 불안했다. 그러면 보호자분이라도 연락해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알리긴 누구에게 알리냐고 다시 성을 냈다. 나는 보호자 연락을 원무과에 부탁하고 잠시 환자를 응급실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연휴라 돌봐야 할 다른 환자들이 너무 많았다.

바쁜 시간이 잠깐 지났고, 환자의 아내가 연락이 닿아 응급실에 내원했다. 전혀 궁핍한 기색이 아니었고 단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검사 진행을 물었다.

“환자분이 계속 돈이 없다고 검사를 거부하셨는데 진행해도 될까요?”

“돈이 없긴 뭐가 없어. 이 양반이 왜 주책이지. 진행해주세요.”

“환자분 술 버릇이 평소에도 안 좋으신가요?”

“안 좋긴요. 얌전한 양반이 오늘따라 이상하네요.”

환자는 이제 의료진의 손길을 뿌리치고 뒤늦게 나타난 아내에게도 욕설을 하고 있었다. 보통 술에 많이 취한 환자의 모습이었지만, 평소와 다르다는 진술에 조금 나쁜 예감이 들었다. 나는 공격적으로 환자를 결박하고 정맥주사로 재운 뒤 CT를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의료진이 달려들었다. 환자는 제압당해 버둥거리다가 주사를 맞고 잠들었다. CT에서는 전두엽 부위에 뇌출혈이 찍혀 나왔다. 음주 상태에서 이마를 부딪혀 생긴 뇌출혈이었고, 그의 행동은 동반된 증상이었다. 억지로 결박하지 않았더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환자는 즉시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아주 드문 경우는 아니었다. 전두엽에 생긴 뇌출혈은 임상 양상이 매우 고약하다. 전두엽은 기억, 사고, 감정 등을 관장하는데, 이 부위가 손상됐을 경우 증상이 성격 변화로만 나타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 ‘술에 많이 취한 듯’한 증상이다. 하지만 응급실에선 그 사람의 본래 성격을 파악하기 어려울뿐더러, 두부 외상은 대부분 음주와 동반되고, 뇌출혈은 CT를 찍기 전까지 절대로 진단할 수 없다. 가끔 단순 취객으로 오인되었다가 나중에 진단되어 ‘뇌출혈을 오진해 방치’ 같은 기사가 나오는 경우도 이런 경우다.

음주 상태로 두부 손상이 의심되나 경제적인 이유로 검사를 거부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너무 많다. 100명이 응급실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99명은 진짜로 검사를 원치 않는 사람이지만, 1명은 뇌출혈이 있어 ‘검사를 거부하는 것’이 증상인 환자다. 그렇다면 그 1명을 찾아내기 위해 모든 환자가 CT를 거부하더라도 물리적으로 결박을 하고 수면마취를 한 뒤 CT를 촬영하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해야 할까?

원칙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뇌출혈 증상은 너무 다양하고 CT를 찍기 전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한 증상의 환자를 전부 물리적으로 결박하고 CT를 촬영한 후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현장에서는 대부분 의사가 경험상 판단해야 하지만, 어떻게 설명하고 기록을 남겼든 뇌출혈일 경우 의사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급박하지만 늘 정확히 알 수 없는 뇌출혈의 특성은 영원히 의사들에게 난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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