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도착 알림서비스로 첫 등장
IMF 딛고 메시징 서비스 기술 개발
은행, 증권사, 홈쇼핑사 줄줄이 계약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도 기술 쓰여
스타트업 키우고 자율주행 다듬고
“벤처 정신으로 끝없이 전진할 것”
1995년 어느날, 서울시청 버스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 30대 남성 두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지하철은 도착하는 안내를 해 주는데 왜 시내버스는 안 되는 걸까요. 저희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내버스 도착알림 서비스’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 당시는 지하철 4호선까지만 있던 터라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더 많았다. 버스 한 번 타려면 정류장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했던 게 일상이었다. 여름이면 뙤약볕, 겨울이면 언 발 녹여가며 버스가 빨리 오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리던 때에 ‘버스 도착알림 서비스’는 획기적이었다. 데이터통신망을 통해 버스와 정류장이 상호 통신을 주고 받아 위치를 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들의 제안은 당장에 추진되는 시범사업으로 분류됐다.
이듬해인 1996년 시범적으로 서울 종로1가에서 동대문을 관통하는 500대의 시내버스와 각각의 정류장에 통신망이 심어졌다. 정류장에 서 있으면 “잠시 뒤 OOO번 버스가 도착할 예정입니다”라는 음성이 나오고, 실제 해당 버스가 잠시 뒤 도착했다. 시범운영은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서울에 다니는 시내버스만 9,000여대, 정류장 수만 2,500여개.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두 청년은 서로 얼싸안으며 쾌재를 불렀다. 공중파 TV방송 출연은 물론 신문사들의 인터뷰가 쇄도할 정도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998년 IMF 한파가 덮쳤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면서 버스도착 알림서비스는 호사였다. 자연스레 버스도착 알림 서비스 사업은 무기한 연기됐다. 두 청년의 꿈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판교테크노밸리 내 인포뱅크(주) 박태형ㆍ장준호 공동대표의 첫 사업성공기 이자 실패담이다. 둘은 고등학교와 대학, 대학원, 군대까지 함께 다녀온 죽마고우다.
지난 5일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1 A동 인포뱅크(주) 사무실을 찾았을 때는 박 대표만 나왔다. 정장에 넥타이,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의 CEO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소박한 옷차림에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동네 형처럼 보였다. 나이도 예순 셋이라고 하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박 대표는 “당시 우리 집 마루에서 장 대표와 둘이서 머리를 맞대 만들어 냈는데 그때만 해도 데이터통신망서비스라는 개념이 없었다”며 “IMF가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반대로 그일 이후 다른 분야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IMF가 여파에 임금삭감, 급여 지연 등에도 불구하고 25명의 임직원들은 단 한 명도 퇴사하지 않고 똘똘 뭉쳤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 회사에 대한 자부심은 곧바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메시징 서비스’라는 획기적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다. 버스 알림 서비스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알림 서비스다.
은행원 출신(박 대표)답게 고객의 입장에서 접근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기업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는 방식에서 고객의 휴대전화에 관련 정보를 바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은행에서 이체를 하거나, 택배를 주문하면 해당 은행이나 업체로부터 날아오는 문자를 생각하면 된다. “OOO 고객님의 통장에서 OOO원이 이체됐습니다”, “OOO님께서 주문하신 상품이 배송될 예정입니다”, “OO원이 결제 됐습니다” 등이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사전 알림 서비스’는 획기적이었다.
굉장히 단순한 서비스, 간단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발상의 전환’으로 시작된 프로그램은 곧바로 매출과 수익으로 이어졌다. 국내 모든 은행은 물론 삼성카드와 LG카드(현 신한카드) 등 국내 모든 카드사와 G마켓 등 쇼핑몰, 잘나가는 증권사, 보험사까지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당시 잘나가던 이동통신사 5곳도 인포뱅크의 ‘메시징 서비스’를 도입했다. 당시 통신사가 다르면 전달이 되지 않던 문자 보내기도 상호 전달이 가능해졌다.
인포뱅크가 개발한 서비스는 우리 주변에 또 있다. TV나 라디오 방송을 보던 중 퀴즈 정답이나 의견을 보내는 양방향 서비스도 인포뱅크의 특허 기술이다. 컴퓨터에서 휴대폰으로 문자서비스는 제공됐지만, 반대로 휴대폰에서 컴퓨터로 보내는 전송기술이 없던 때였다. 방송 또는 프로그램에 개별 식별번호(#1234와 같은 식)를 부여해 준 것이다.
JTBC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인 히든싱어에서 사회자가 “자, 여러분 이 노래의 가수는 몇 번 방에 있을까요. #OOOO으로 보내주세요”, 혹은 라디오에서 “청취자 여러분의 의견을 받습니다. #OOOO, 단문 50원, 장문 100원”이라고 했을 때 시청자 또는 청취자들이 식별번호( #OOOO)로 보낼 때 쓰이는 프로그램이 바로 이들의 작품이다.
물론 인포뱅크의 성공에 실패의 쓰라린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없어서는 안될 메신저가 ‘카카오톡’이지만 인포뱅크는 이보다 한 달여 앞선 2010년 2월초 ‘엠엔톡’을 개발했었다. 사용자가 100만명까지 늘어났지만 더 이상 키우지 못했다. 한 달 뒤 나온 ‘카톡’이 역전해 버린 것이다.
산지와 농촌을 도시와 직접 연결해 주는 직거래 장터 앱도 개발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밴드’에 앞서 ‘클럽’을 만들었지만 이 또한 일상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경험이 있기에 인포뱅크의 도전은 계속됐다. 잘나가는 회사를 6개 사업부문으로 세분화 했다. 물론 법인이 분리된 것은 아니다. 잘나가는 중소기업이라는 명성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창업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스타트업처럼 더 열심히 하기 위해 6개 부문에 별도의 대표를 뒀다. 6명의 대표들은 모두 인포뱅크 출신 직원들이다. 수익도 철저히 공평하게 나눈다. 박 대표 등은 이들 6개 부문장의 멘토이자, 사업파트너로서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다.
인포뱅크는 성공에 멈추지 않고 미래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바로 ‘텔레매틱스’다. 자동차와 정보통신 기술의 결합을 뜻하는 것으로 ‘자율주행 셔틀버스’가 이들의 새로운 타깃이다. 이미 자율주행 셔틀버스 운행을 위한 시스템을 개발을 완료한 상태다. 차량에 탑재된 각종 제어장치 및 단말기와 통신망 서버 간 연동 솔루션을 개발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최근 북한의 고위 간부가 경기도를 방문했을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와 함께 탄 자율주행 버스인 ‘제로 셔틀’에도 이 기술이 적용됐다.
아직 일상 운행은 어렵지만 공항 입출국장에서 비행기까지 승객을 나르는 버스, 공장부지 내에서 직원들을 수송하는 차량 등 계산된 구간의 운행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80여 개의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단순히 자금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직접 소개해 주는 것에서부터 운영서비스를 통한 장애관리, 특허 출원을 지원하고 있다. 자본금이 작고, 상용화에 신경 쓰다 보면 특허출원 하기가 쉽지 않다는 스타트업의 약점을 인포뱅크가 보완해주고 있는 것이다. 원천특허에서 주변특허 출원까지 돕고 있다.
박 대표는 “22년 만에 돌고 돌아 다시 버스네요”라며 웃었다. 버스 도착 알림서비스로 시작했는데 한 바퀴 돌아 결국 자율주행 셔틀버스로 돌아왔다는 의미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스타트업 정신을 바탕으로 전진해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처럼 지속하며 사랑 받는 행복한 회사가 목표”
다음은 박태형 대표 일문일답.
-JTBC ‘히든싱어4’와 제19대 대통령선거 때 5대 방송사에 ‘메시징 서비스’를 제공해다. 메시징 서비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
“인포뱅크의 여러 메시징 서비스 중 하나인 시청자 참여 양방향 메시징 서비스이다. JTBC ’히든싱어’ 생방송 왕중왕전 편에서 100% ‘시청자 문자투표’ 형식의 양방향 메시징서비스를 통해 최종 우승자를 선정했다.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일 지상파 3사와 YTN, MBN의 선거방송에서 ‘시청자의 투표 인증샷’ 양방향 메시징을 이용해 방송 자막으로 소개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투표를 독려하는 목적으로 이용됐다. 제18대 대선을 기점으로 총선과 지방선거에도 이용되고 있다. 퀴즈쇼에서는 떨어져 지내는 수 백만명의 가정이, 각자 집에서 퀴즈에 참여하며 그 시간만이라도 화합하며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게 해줬다. 퀴즈쇼 1회에서는 최대 1,000만회 양방향 메시징 서비스가 이용됐다. 놀라운 사례이다.”
-‘포춘’ 선정 모바일금융 글로벌기업, ‘포브스’ 선정 아시아 200대 유망 중소기업에 선정됐다. 어떤 점을 높이 산 것인가?
“2000년대 초에는 모바일 메시징과 모바일 금융(증권거래)을 결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없었다.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일한 회사가 인포뱅크였기 때문에 그런 점이 글로벌 매체의 이목을 끈 듯 하다.
-메시징 서비스의 매출액이 85% 안팎으로 절대 다수인데 단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나?
“인포뱅크는 메시징 서비스의 다양한 영역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이 강점이다. 그 강점을 단점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특히 우리의 강점인 메시징 서비스를 크게 나누면 메신저(카톡, 라인,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 등)상 알림톡, 상담톡, 연동 서비스가 있다. 또 챗봇(네이버, 카카오, 구글) 서비스, 음성 챗봇 등이 있다.”
-스마트카 비즈니스에서는 어떤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나?
“현대모비스와의 협업을 통한 인포테인먼트 개발 사업에 유의미한 성과가 있으며, 자율주행차와 관련된 서비스 부분에서 초석을 다지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IT기업은 부침이 심한데 인포뱅크는 성장세가 대단하다. 연구개발 인력 등 회사의 강점을 소개해 달라.
“모두가 벤처 동업가의 정신으로, 스스로 대표가 돼 생각하고 판단해 실행한 점이 인포뱅크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
-인포뱅크 메시징 서비스와 카카오톡, 라인과의 차별성은 어떻게 되나?
“인포뱅크 메시징 서비스는 카카오톡이나 라인 메시징 서비스와 다른 성격의 서비스이기 때문에 비교해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카카오톡, 라인 등은 소비자에게 바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커니즘이라고 한다면, 인포뱅크 메시징 서비스는 기업과 메신저 서비스(카카오톡,라인 등) 플랫폼을 연결하는 서비스다. 인포뱅크의 메시징 서비스는 특정 메시지 플랫폼(라인, 카카오톡, 통신사)에 국한되지 않고 기업과 고객이 소통하는 모든 메시지 플랫폼을 연결하는 ‘통합 메시지 GW’를 목표로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5G 시대를 맞아 어떤 서비스를 준비 중인가?
“인포뱅크는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연구로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데 탁월하다고 자부한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을 연구해 기존 서비스에 반영하고 있으며, 그것이 의미 있는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IT기업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은 아무래도 규칙적이기 어렵다고 본다. 직원들과의 소통은 어떤 식으로 하는 지 말해달라.
“인포뱅크는 크게 4가지 비전을 갖고 있다. 이 건강한 비전을 가지고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구성원들과 끊임 없이 소통해온 노력이 인포뱅크를 24년이란 시간 동안 이어질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첫째 믿음 소망 사랑이다. 인포뱅크 가족, 주주, 고객, 세상에 믿음 소망 사랑을 전하는 의로운 회사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두 번째는 마음이 통하는 세상을 지향하고 있다. 세 번째는 자발적 몰입 학습이다. 대학처럼 지속하며 사랑 받는 행복한 회사가 되고자 한다. 마지막은 ‘iStartup’,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내가 대표다’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마인드를 심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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