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대 초반으로 대폭 낮추면서 세계경제에 대한 비관론도 한층 확산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이 주도해온 글로벌 호황기가 급속히 종료되고 있다는 것이다. ECB가 경기부양책으로 내놓은 시중자금 공급 대책도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는 분위기다.
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7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7%(지난해 12월 전망)에서 1.1%로 대폭 낮춘다고 밝혔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 역시 1.7%에서 1.6%로 내렸고 내후년 전망치는 1.5%로 유지했다. 드라기 총재는 보호무역주의 확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를 하향 조정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경기침체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하면서도 “올해 경기 둔화가 예상되는 만큼 상당한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 ECB는 이번 회의에서 당초 올해 6월이던 현행 제로(0%) 기준금리 유지 기간을 연말로 연장하는 한편, 9월부터 1년6개월 간 목표물 장기대출(Targeted Longer-Term Refinancing OprerationㆍTLTRO)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ECB가 2014~2016년, 2016~2017년에 이어 세 번째로 시행하는 TLTRO는 시중은행 대출자산의 최대 30%까지 제로금리 수준으로 돈을 빌려주는 정책이다. 실물경제에 대출을 많이 하는 은행에 더 많은 돈을 빌려줘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이다.
이번 조치를 두고 시장에선 ECB가 통화정책 방향을 긴축에서 완화로 급선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로 인한 침체에 맞서 양적완화(채권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를 시행해온 ECB는 성장세가 회복되자 2016년부터 채권매입을 규모를 줄여 지난해 말 매입을 종료하는 긴축정책을 펴왔다. 블룸버그통신은 “ECB가 양적완화 종료가 실수였음을 인정하는 조치에 착수했다”고 논평했다.
유럽의 경기부양책은 통상 세계경제 차원의 호재이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7일 미국과 유럽 증시는 물론이고 8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동시에 미 달러화, 미 국채 등 시장이 불안할 때 수요가 늘어나는 안전자산에 투자금이 대거 몰렸다. ECB의 성장률 조정폭이 워낙 컸던 점, 드라기 총재가 평소와 달리 여러 부양책을 내놓으면서도 부정적 경기 전망을 거두지 않은 점 등이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지난해 성장률이 0.7%로 내려앉고 유럽도 부진에 빠져들 조짐을 보이며 글로벌 호황을 주도하던 선진국 경제에 잇따라 경고등이 켜지는 형국이다. ‘마지막 보루’ 미국 경제도 최근 지표에서 무역적자 확대, 제조ㆍ건설 업황 부진이 확인되는 등 심상치 않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라엘 브레이너드 이사는 7일 강연에서 “글로벌 경제 둔화가 예상보다 길어지는 가운데 (미국 내)투자자 및 소비자 심리지표는 내수 냉각을 시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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