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체성을 지키려는 숭실대의 입장은 확고하며, 과거 일제 강점기에도 건학이념과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1938년 자진 폐교한 유일한 대학이 숭실대학교이다.”
숭실대 재학생 성소수자 모임이 최근 ‘성소수자/비성소수자 모두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교내에 설치하겠다고 나서자 숭실대가 6일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 숭실대는 앞서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소수자 차별’에 대한 시정 권고를 받은 적도 있다. 숭실대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 대표 A씨는 “인권위 권고 두 달 만에 다시 이런 결정을 접하니 학교로부터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느낌이 든다”고 털어놨다.
인권위가 대학의 소수자 차별 행위에 대해 잇따라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오불관언이다. 특히 기독교 계통의 대학이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내세우며 공공연히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숭실대는 앞서 2015년 11월 동성애 소재 영화를 상영하는 인권영화제에 대해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교내 상영관 대관을 거부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1월 7일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학내 구성원의 표현의 자유나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소수자를 배제하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며 성적 지향을 이유로 시설 대관 등을 불허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숭실대는 현수막 문제로 재차 성소수자 문제가 불거지자 이번에는 헌법까지 들고 나왔다. 현행 헌법상 동성결혼을 불허하는 점이나 군대 내 동성 간 성관계는 처벌대상인 점을 근거로 6일 공식입장문에서 “인권위 권고사항은 헌법을 넘어서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맞섰다.
기독교계 사학인 한동대에서는 2017년 12월 개최된 페미니즘 강연이 문제가 됐다. 학교 측은 당시 강연이 학교규정 및 건학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연 개최를 불허했으나, 학교 측 입장을 통보 받고도 강연을 진행한 학생 B씨에게 무기정학 징계를 내렸다. 또 학교는 B씨가 성소수자 관련 포럼에서 세 명 이상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 사랑하는 ‘비독점적 다자연애(폴리아모리, polyamory)’ 성향을 드러냈다며 이를 반성하는 취지의 진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1월 B씨 징계처분이 적법하지 않고, 폴리아모리에 대한 진술서 요청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시정 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B씨는 “인권위 권고에도 대학 측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서 대학 측에 인권위 권고 수용과 징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기독교계 대학에서는 성소수자 모임의 공개적 활동 자체를 금지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충청 지역의 A 기독교계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 C씨는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문양 팔찌를 차고 기독교 교양 강의를 듣다가 교수에게 ‘동성애를 지지하냐, 동성애 성향을 가졌냐’는 질문을 들은 적 있다”며 “성소수자임이 드러나면 학교로부터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종교를 앞세운 소수자 차별은 기독교 건학 이념에도 배치된다며 포용과 공존의 태도를 주문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군 형법상 동성애 금지나, 동성혼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반동성애가 헌법상 바람직하다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발상”이라며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단 하나 만의 세계관과 종교관을 강요하는 태도는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보일 처신이 아니다”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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