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를 마음 놓고 마셔도 되나요.”
중국에 장기간 거주하는 외국인이라면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해본 질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우유 대신 끝내 요구르트나 다른 음료를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간 중국에서 터진 각종 식품 사고의 충격적인 기억 때문이다. 멜라민 분유, 가짜 쌀과 달걀, 파라핀 샤부샤부, 석회 밀가루, 시멘트 호두 등. 언뜻 떠올려도 죄다 나열하기에 숨이 벅찰 정도다. ‘국민은 나라의 근본이며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강조해온 중국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지난해 영유아용 백신마저 가짜로 판명되면서 여론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당국이 극약 처방을 꺼냈다. 지방의 당정 간부에게 식품 안전 관리책임을 지우는 새로운 규정이다. 식품 사고가 발생하면 31개 성의 당과 정부 주요 책임자가 우선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지방을 장악한 소수의 ‘키 맨’을 중앙에서 확실히 다잡아 먹거리로 장난칠 여지를 아예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과거 사고에 연루된 당사자만 처벌하면서 꼬리 자르기 시늉을 내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다.
사실 식품 안전은 시진핑(習近平) 주석 집권 이후 오랜 화두였다. 2013년 12월 시 주석은 중앙농촌공작회의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 가장 엄격한 단속, 가장 엄중한 처벌, 가장 엄중한 문책이라는 4대 방침을 천명하며 대중의 먹거리에 대한 당과 정부의 무한책임을 강조했다.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식품 안전 책임제를 강조하더니 지난해 당 19기 3중전회를 통해 식품 안전을 보장할 담당기구로 시장감시총국을 설치했다.
하지만 사고는 근절되지 않았고, 급기야 지난해 7월 가짜 백신 파동이 불거지자 문제의 심각성을 간파한 중앙정부는 사고 수습을 기존처럼 지방에 맡기는 대신 담당부처 책임 간부를 직접 내려 보내 엄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며 여론을 무마하려 애썼다. 이번에 새로 도입한 지방 간부 책임제는 아예 지방정부에 1차 관리의무를 부과해 주요 간부들이 자신의 직을 걸고 식품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기조에 맞춰 중국 공안은 지난 1일 아프리카 콜레라 감염지역의 돼지 밀수, 유통에 관여한 9,600명을 단속, 처벌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또 지난해 10월 시행한 식품의약품 안전 100일 캠페인 결과 7,100여건의 사건에 가담한 범죄혐의자 8,900여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가짜 술을 제조한 생산 거점 200여곳도 없앴다. 가히 식품 범죄와의 전쟁을 벌여온 셈이다. 바꿔 말하면 여전히 널려 있는 불량 먹거리의 배후에 조직적인 세력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한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단 여론은 환영 일색이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작심하고 칼을 빼든 정부가 제대로 소를 잡을지, 아니면 무를 썰다 끝날지에 중국인들의 시선이 쏠려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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