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농촌에서 태어나 얼떨결에 가수가 됐지만 음악은 제 인생에서 전부였어요. 노래로 실존에 대한 고민과 세상에 대한 얘기를 담아낼 수 있었으니까요.”(정태춘ㆍ65)
“정태춘씨를 옆에서 보며 늘 부러워했어요. 재능은 타고 나는거구나 싶어서요. 하지만 다음 생에서도 음악하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박은옥ㆍ62)
유명 가수 부부 정태춘ㆍ박은옥에게 음악은 서로를 지탱한 버팀목이었다. 7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그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나 이 따스한 봄날”. 부부의 음악 인생 40념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정태춘은 지난 1월 썼다는 미발표 신곡 ‘연남, 봄날’을 처음으로 들려줬다.
정태춘은 7년 만에 다시 곡을 썼다. “음악이 내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간 곡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정태춘의 언 마음을 녹인 건 가족이었다. 정태춘은 “몇 년 동안 힘든 일이 있었다”며 “이제 (고통에서)벗어나고 있어 봄기운을 맞듯 가족이 새 출발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곡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태춘ㆍ박은옥은 4월 앨범 ‘사람들 2019’를 낸다. 음악 활동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했다. 이 앨범엔 ‘고향’‘나그네’‘빈산’ 등 옛 노래와 신곡 ‘외연도’등이 실린다. 정태춘은 1978년 1집 ‘시인의 마을’로 데뷔했고, 박은옥은 그보다 1년 뒤인 1979년 1집‘회상’을 냈다. 하지만 두 사람은 2009년 박은옥의 데뷔 30년 기념 공연을 함께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올해 40돌을 함께 치르기로 했다. 부부는 앨범을 낸 뒤 같은 달 13일 제주를 시작으로 11월까지 전국 순회공연 ‘날자, 오리배’를 연다. 정태춘은 시집 ‘슬픈 런치’와 에세이 형식의 가사 해설집도 출간한다. 부부는함께 다큐멘터리 음악 영화도 찍는다. 정태춘ㆍ박은옥의 음악 활동 40년을 조명하고자 144명의 예술인이 힘을 모아 꾸리는 프로젝트다.
정태춘ㆍ박은옥은 1970년대 후반 음반회사에서 처음 만났다. 부산에서 노래했던 박은옥은 서울로 올라와 가수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박은옥은 정태춘에게 곡을 받아 1집을 냈다. 정태춘은 박은옥의 맑은 목소리에, 박은옥은 정태춘의 이야기에 끌렸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둘은 사랑에 빠졌다. 1980년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1984년부터 함께 이름을 올려 앨범을 냈다. 부부의 시작은 화려했다. “그대 고운 목소리에”“내 마음 흔들리고”. 부부는 함께 부른 ‘사랑하는 이에게’로 주목받았다.
부부는 ‘음악 동지’였다. 정태춘은 데뷔 초 목가적 삶을 동경하는 포크송을 주로 불렀다. ‘시인의 마을’과 ‘촛불’ 등이었다. 박은옥은 ‘윙윙윙’ ‘회상’ 등 듣기 편한 가요로 음악팬을 사로 잡았다.
대중적 관심을 받던 부부는 화려한 무대 대신 ‘거리’로 나섰다. 1988년 정태춘이 청계피복노조 지지 공연에 참여한 뒤부터 부부의 음악은 달라졌다. 정태춘은 억압받고 소외 당한 약자를 위해 노래했다. 전원적이던 정태춘의 음악은 1990년 낸 앨범 ‘아, 대한민국’부터 투쟁적으로 변했다. 정태춘은 전교조 합법화를 위해 공연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를 열고, 음반 사전 검열 철폐 운동을 벌인 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까지 참여하며 고된 길을 갔다. 박은옥은 정태춘과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의 모순을 온몸으로 견디며 실천적 예술가로서 동행했다. 하지만 남편을 보는 아내의 마음이 늘 편하지는 않았다. 박은옥은 “음반 사전 검열과 맞서 싸울 때 가장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정태춘은 ‘초기 작품은 개인 일기였고, 1980년대 후반 이후 앨범은 우리 모두의 사회 일기’라고 표현했다. 정태춘은 “그 시대를 함께한 이들이 겪은 군사독재, 광주 민주 항쟁 등이 내게도 영향을 미쳤다”며 “역사적인 상황에서 나도 깨어나고 변화했다. 비로소 어른, 시민이 됐다고 할까”라고 말했다. 그는 “날 일깨워준 건 우리 시대”라고 했다.
값진 음악은 시대가 기억하기 마련.정태춘ㆍ박은옥이 1993년 낸 ‘92 장마, 종로에서’는 23년이 지난 2016년 광화문광장에서 다시 울려퍼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시민이 든 촛불 물결에서였다.
정태춘은 다시 세상을 향해 ‘날’을 벼렸다. 그는 “2,300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고”라 읊조린 ‘사람들’(1993)을 ‘사람들 2019’로 새로 녹음해 발표한다. 정태춘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죽음이 있었는지를 담았다”며 “우리 사회에 가장 심각한 단어가 차별이라 생각해 그 이야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박은옥은 마이크를 들어 남편의 말에 힘을 보탰다.
“얼마 전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방시혁 대표의 서울대학교 졸업 축사를 기사로 봤어요.분노와 불평이 동력이 됐다고 하더라고요.그걸 읽으며 정태춘씨를 생각했어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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