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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무기수 김신혜 19년의 절규

입력
2019.03.07 18:00
수정
2019.03.08 14:3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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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일어난 이른바 ‘산낙지 살인사건’은 1심에선 유죄였으나 2, 3심 재판부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모텔에 함께 투숙한 여자친구가 산낙지를 먹다 질식해 숨졌다고 신고한 남자의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범죄 사실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는 법 조항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판사 출신 작가 도진기가 이 사건을 모티브로 쓴 소설 ‘합리적 의심’에서 유죄 결정을 한 1심 부장판사는 나중에 “의심은 농후하나 피고인이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확실히 존재했다”고 읊조렸다.

□ 한 사람의 목숨까지 좌우할 수 있는 형사재판에서 유죄 인정을 받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합리적 의심’ 원칙이다. 배심제와 더불어 미국 헌법에 뿌리내린 이 원칙은 1994년의 ‘오 제이 심슨 사건’으로 대중에 깊이 각인됐다. 백인인 전처 니콜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미식축구계의 흑인 슈퍼스타 심슨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결정적 요인이 바로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었다.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규정된 ‘적법 절차’ 조항이 이 원칙의 근거인데, 인종차별 요소를 포함해 검찰의 무리한 증거수집이 무죄의 빌미가 됐다.

□ 우리 사법사상 첫 무기수 재심인 ‘김신혜 친부살해 사건’의 공판이 6일 시작됐다. 2000년 수면제가 든 술을 마시게 해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김씨에게 18년 만인 지난해 재심결정이 내려진 것은 영화 ‘재심’의 실제 모델인 박준영 변호사 공이 컸다. 김씨가 용의자 단계에서부터 줄곧 범행을 부인하는 것을 이상히 여겨 2014년부터 사건을 파헤쳐 유죄 근거가 된 많은 증거들이 ‘오염’된 사실을 밝혀냈다.

□ 살해 동기로 지목된 부친의 여동생 성추행은 그런 사실이 없었고, 아버지에게 가입해 준 8개의 보험금은 수령 불가능 상태였다. 아버지 시신서 발견된 수면제 성분은 살해용으로 보기 어렵고, 관련 물증도 발견되지 않았다. 영장없는 압수수색, 압수조서 허위작성, 폭행ㆍ폭언 등 강압수사도 밝혀졌다. 증거 능력을 따지기 이전에 명백한 적법 절차 위배다. “수사기관은 확실한 물증 하나 없이 김신혜를 체포해 가뒀다. 그리고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연된 정의’, 박상규ㆍ박준영) 무죄가 인정되면 19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는 누가 책임질 텐가.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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