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장자연 사망 사건 이후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촉구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미투 운동이 번지면서 장자연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연예계 성폭력 사건 등에 대한 대책 마련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장자연 사건은 방송 및 연예계의 침묵의 카르텔을 드러냈다. 그간 업계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은밀하게 이뤄졌던 성폭력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사건 6개월 뒤인 2009년 9월부터 3개월 간 여성 연기자 및 연기자 지망생 3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60.2%가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 인사로부터 성접대 제의를 받은 바 있다. 이 중 48.4%가 이를 거부한 후 캐스팅이나 광고출연 등 연예활동에서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당시 설문에 참여한 20대 중반 연기자는 “기획사 대표가 모텔로 끌고 간 적이 있다”며 “연예계에서 일하기 위해선 세상과 남자를 더 알아야 한다는 이유였다”고 말했다.
제도적인 변화도 뒤따랐다. 2013년 방송출연표준계약서가 제정됐으며, 지난해에는 표준전속계약서도 만들어졌다. 일명 ‘노예 계약’으로 인해 연예인이 소속사로부터 정신적ㆍ육체적 착취를 당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은 지난해 3월 콘텐츠성폭력센터 보라를 개소하면서 대중문화계 성범죄 근절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콘진원에 따르면 이달 7일까지 센터에 신고 접수된 성폭력 피해는 12건이며, 그 중 법률 지원과 상담 지원이 각각 3건과 7건을 차지했다. 성폭력 상담 요청도 70건에 달했다.
정부 차원의 노력에도 성폭력 근절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3월부터 100일간 서울해바라기센터 등에 접수된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사례 119건을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 및 연예 분야 피해 신고는 6건(5%)였으며, 음악과 영화 분야는 각각 13건(10.9%)와 4건(3.4%)에 달했다. 방송 및 연예 분야(4건ㆍ66.7%)와 음악 분야(3건ㆍ23.1%)에서 일어난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직업 다수가 PD와 연기자 등 현장 내 상하관계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출연자의 출연 기회가 공식적인 관계보다 프로그램 PD와의 인맥 관리를 통해 마련된다는 점에서 현장 상하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 신고 접수가 다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하는 한 방송 및 연예계 성폭력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여성단체는 장자연 사망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한편,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대표는 “장자연 사건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연예계 권력 관계에 대한 문제”라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되거나 차별을 받지 않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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