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태 사법부에서는 법관 비위를 감시하는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이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현직 부장판사에게 검찰 수사 기밀을 유출하는 일까지 벌어졌던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별도의 태스크포스(TF) 팀까지 만들어 감사ㆍ감찰 기능을 자체 무장해제시켰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7일 사법농단에 가담한 혐의(공무상 기밀누설)로 불구속 기소된 성창호 부장판사의 공소사실 등에 따르면 20016년 4월 정운호 당시 네이처퍼브릭 대표의 상습 도박사건이 김수천 인천지법 부장판사까지 연결된 법조비리로 확대되자 별도의 비밀 TF를 가동했다. 법원행정처 TF는 우선 신광렬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판사에게 “중앙지법 영장전담부로 들어오는 검찰 수사 정보를 빼돌려라”는 지시를 내렸다. 신 수석은 이에 성창호ㆍ조의연 당시 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에게 같은 지시를 전달했고, 두 영장전담부장은 10여건의 수사 관련 기밀을 직접 복사해 행정처로 유출했다.
유출된 수사 자료는 김현보 당시 행정처 윤리감사관을 거쳐 당시 피의자였던 김수천 부장에게 직접 전달됐다. 김 감사관은 같은 해 8월 김 부장을 대면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만나 “계좌추적 결과 김수천 부장판사의 딸 명의 계좌로 1,800만원이 입급된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검찰의 구속영장청구서 내용을 알려줬다. 성 부장 등이 유출한 수사기밀이 양 전 대법원장 등 행정처 수뇌부의 재판 및 언론 대응 전략으로 활용되는 것을 넘어 김 부장의 불법적인 구명 활동에도 활용된 셈이다. 실제로 김 부장은 김 감사관을 만난 당일 오후 뇌물공여자인 이모씨를 찾아가 1,800만원에 대한 허위진술을 강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리감사관이 수사기밀을 유출한 직후인 같은 해 9월6일 양 대법원장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윤리감사관실 기능 강화와 확대를 골자로 한 ‘법관 비리 근절안’을 발표했다. 윤리감사관은 법원행정처 차장 직속으로, 법관 비위 의혹 관련 보고라인은 ‘행정처 차장 → 처장’이다. 하지만 징계 청구가 될 만한 사안은 징계청구권자인 대법원장에게 직접 보고된다. 이런 구조라면 감사관이 비리 법관을 구제하기 위해 수사기밀을 유출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대법원장이 겉으로 법관 비리 근절을 외치며 표리부동한 행보에 나선 것이다.
당시 감사관은 이어 같은 달 28일 정운호 게이트 관련 항소심을 겨냥해 작성한 뒤 양 전 대법관에게 보고한 ‘부산고법 판사 관련 리스크 검토’라는 비밀 문건에서 여론 조작까지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건에서 감사관은 “공판을 1, 2회 더 진행해 항소심이 제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마치 법원이 비리 법관에 대해 엄정한 대처를 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할 필요가 있다’는 꼼꼼한 계획까지 제시했던 당시 감사관은 이후 법복을 벗고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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