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부가 기본소득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 몇 년 간 급속도로 증가한 빈곤층을 구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지만, 일자리 창출 및 취업 알선이 뒤따르지 않아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이 주도하는 이탈리아 정부는 이날부터 웹사이트를 통해 기본소득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빈곤층 구제와 소비 진작, 직업 교육 등을 목표로 실시되는 이 제도는 월 수입이 빈곤선인 780유로(약 99만5,000원) 미만인 사람만 신청할 수 있다. 1인 가구엔 최대 월 780유로, 4인 가구엔 1,300유로까지 지급된다.
수혜자로 선정되면 4월 중순부터 선불카드를 지급받아 △식료품 △의약품 구입에 한해 사용할 수 있다. 혜택은 18개월 동안 제공되지만, 이 기간이 지난 뒤에도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재신청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이 노동의욕을 감퇴시킬 것이란 우려 탓인지, 노동이 가능한 수혜자들은 반드시 직무교육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도 포함됐다. 세 번 이상 일자리 제의를 거절한 사람에겐 기본소득 지급이 중단된다.
이탈리아에 전례 없던 복지 정책을 밀어붙인 오성운동은 이번 정책이 “혁명적”이라며 자찬했다.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 겸 노동산업부 장관은 “정부가 드디어 보이지 않던 사람들, 이탈리아의 가장자리에 있고 정치적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돌보게 됐다”면서 “약 500만 명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탈리아가 수백만 명에게 제대로 된 직무교육과 고용을 제공할만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실업률을 끌어내려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기 보다는 일시적 ‘돈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미셸 마르토네 로마 루이스대 노동법 교수는 가디언에 “일자리를 구해줄 수 있는 행정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고, 이탈리아 남부에는 일자리 자체가 없다”면서 “빈곤 구제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일자리를 구해준다는 두 번째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에 사용되는 막대한 예산도 부담이다. 정부가 배당한 예산은 총 71억유로(약 9조600억원). 이는 전임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한 보조금으로 책정했던 연 20억유로보다 3배 이상 많은 규모다. 특히 이탈리아는 국내총생산(GDP)의 130%가 넘는 막대한 국가부채를 지고 있어 기본소득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실업률 상승과 맞물려 지난 10년 간 빈곤층이 빠르게 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디 마이오 부총리가 이끄는 오성운동은 지난해 3월 총선에서 기본소득 공약을 앞세워 상대적으로 빈곤한 남부에서 몰표를 받아 이탈리아 최대 정당이 됐다. 이후 극우 성향의 정당 ‘동맹’과 손을 잡고 집권에 성공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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