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태국ㆍ캄보디아가 맞붙은 프레아 비히어 사원
제국주의 시기 프랑스가 잘못 그린 지도 한 장은 훗날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 갈등의 씨앗이 됐다. 1900년대 초반 인도차이나를 식민지배하던 프랑스는 지도상에 태국 힌두교 사원인 프레아 비히어 사원을 캄보디아에 속하는 것으로 표기했다. 당시 이를 프랑스의 단순 실수라 여긴 태국 정부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1953년 캄보디아가 프랑스에서 독립하면서 양국 간 영유권 분쟁이 본격화 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까지 캄보디아의 손을 들어주면서, 태국은 눈 뜨고 땅을 빼앗기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힌두교 삼주신 중 ‘시바 신’을 모시는 프레아 비히어 사원은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을 가로지르는 당렉 산맥의 해발 525m 절벽에 위치해 있다. 1902년 태국과 당시 캄보디아를 포함한 인도차이나를 점령한 프랑스는 이 산맥을 국경으로 삼는 조약을 맺었다. 이때 프랑스가 제작한 지도에 양국 국경선이 프레아 비히어 사원 북쪽으로 그어졌는데, 이후 국제 분쟁의 원인이 됐다. 게다가 태국 정부는 1934년 이런 오류를 발견하고도, 딱히 시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이후 소유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를 남겼다.
양국은 한동안 분쟁을 지속하다 1959년 사원의 귀속여부를 ICJ에 판단해달라고 요청했다. ICJ는 1962년 ‘지도상 프레아 비히어 사원과 그 일대가 인도차이나 지역에 표시된 것을 태국 정부가 인지한 점’, ‘오류를 인지하고도 프랑스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사원이 캄보디아 소유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태국 정부는 곧바로 입장을 바꿔 “사원은 몰라도 약 4.6㎢에 이르는 사원 주변 지역에 대한 영유권은 포기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여기에 더해 2008년 프레아 비히어 사원과 그 일대는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사원 주변 지역에 대한 양국의 영유권 논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유산 등재가 이뤄지자, 태국 정부는 크게 반발했다. ICJ 판결에 대한 전면 재검토 요구와 함께 두 나라 군대의 전면 충돌 직전 상황까지 이어졌다.
당시 위기는 가까스로 해결됐지만, 사원을 둘러싼 물리적 분쟁은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다. 실제로 2011년 사원 일대에 교전이 일어나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양국 관계가 심각해지자, ICJ가 나서 프레아 비히어 사원을 ‘비무장지대’로 지정하고 양국 군의 철수를 지시하기도 했다. 2년 뒤인 2013년에는 ICJ가 1962년 판결을 재확인하고, 캄보디아 정부에 태국 영토를 통하지 않고 사원을 출입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이슬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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