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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은 여전히 잘나가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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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은 여전히 잘나가지 못하는가

입력
2019.03.07 17:51
수정
2019.03.07 22:2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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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여성의 가치를, 힘을 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까. 여성들이 스스로 힘을 키우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성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내면의 가부장 실체를 깨닫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사우 제공.
여성들은 여성의 가치를, 힘을 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까. 여성들이 스스로 힘을 키우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성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내면의 가부장 실체를 깨닫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사우 제공.

“여자로 태어나서 참 아깝지 뭐야.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잘 됐을 텐데.” “여자들은 부유한 남자 만나서 시집가는 게 최고지.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 “여자들은 판단력이 흐려. 여자 의사나 여자 변호사에겐 절대 일을 맡기지 않을 거야.”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점철된 이 말들의 화자는 놀랍게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고 ‘내 안의 가부장’의 저자 시드라 레비 스톤은 말한다. 다수의 여성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헛소리라고 펄쩍 뛰겠지만, ‘뭐, 꼭 틀린 말은 아니네’라고 슬쩍 공감을 표하는 여성도 있겠다.

내안의 가부장

시드라 레비 스톤 지음 백윤영미 이정규 옮김

사우 발행•256쪽•1만6,000원

여성의 권익이 크게 향상됐다고 하나,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잘나가지 못한다. 여성 리더는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일하는 여성은 차별과 편견에 시달린다.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는 여성들의 노동은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한다.

40년 경력의 미국 심리 치료사인 시드라 레비 스톤 박사는 여성들이 더 높이, 더 멀리 도약하지 못하는 책임이 오직 남성에게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 무의식에 똬리를 틀고 있는 ‘내면 가부장’의 죄를 묻는다. ‘내면 가부장’은 여성과 여성성을 하찮게 여기고 낡은 가부장제 규칙과 가치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자아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저자는 여성 수천 명을 상담하며 내면 가부장의 실체를 목격했다. 책은 그 자아를 증언하는 기록이다.

여성들이 내면 가부장의 명령을 따르는 건 ‘생존 비법’이다. 남성 중심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적당히 보호받고 편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여성들은 내면 가부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스스로를 검열한다.

‘명예 남성’ ‘여성 마초’라 불리는 여성들이 그 예다. 그들이 가부장 질서에 순응하는 대가로 얻는 것은 조직과 사회에서의 ‘작은’ 성공이다. 그런 여성들은 남성을 떠받들거나 남성에게 성과를 일부러 몰아 주곤 한다. 힘을 가진 남성들이 자신을 경계하지 않게 하기 위한 전략이다. 다른 여성을 욕하는 일에 앞장서는 건 남성들로부터 ‘한 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다. 그들은 가부장제에 충실히 협력하면서, ‘의도적으로’ 힘을 키우지 않는다. 이를테면, 스스로 유리 천장을 만드는 여성들이다.

내면 가부장은 여성의 본성도 억제한다. 아름다움과 관능적 매력을 발산하는 여성을 보면 내면 가부장이 작동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남성에게 통제받는 대상이지, 여성들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애써 길들인다. 종족 보존의 본능에도 편견이 작용한다. 결혼을 결심하는 남성은 ‘가정을 책임지는 어른’으로 인정받는다. 반면 배우자를 찾는 여성에겐 ‘남자에게 기대려는 나약하고 무능한 인간’이란 딱지가 붙는다.

솔직해지자. 여성들이 내면 가부장의 존재를 잘 안다. 그렇다면, 약자를 보호하고 돌봄의 가치를 강조하는 ‘내면 가모장’이 내면 가부장과 한 판 붙으면 되는 거 아닐까. 저자는 내면 가부장을 배척하고 싸우는 것은 그다지 똑똑한 해법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또 다른 대립과 폭력, 혐오를 불러올 뿐이기 때문이다. “내면 가부장은 이원론 위에서 번성한다. 여성과 남성은 본질적으로 다르고, 남성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본다. 우리가 내면 가부장과 싸우며 그늘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면, 내면 가부장의 선례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내놓은 대안은 가부장도 가모장도 아닌 “통합”이다. “한쪽 팔은 내면 가부장에게, 다른 팔은 내면 가모장에게 두르고 있는 상태”다. 내면 가부장을 무조건 억누르기보다는 ‘삶의 자문가’로 삼아 적극 이용하라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출 것, 권위를 당당히 획득할 것, 때로는 인간미 없는 사람이 될 것,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낼 것 등 여성들이 취약한 지점을 내면 가부장의 장점을 취해 극복하라는 메시지다.

내면 가부장의 가치가 절대 선이 아닌데도 여성이 그 길을 따라가라는 게 맞는 걸까. 책을 번역한 ‘가치성장과 치유센터’ 백윤영미 대표는 “세상과의 타협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 “내면 가부장도 우리의 자아 중 일부다. 여성주의적 가치를 온전히 드러내려면, 또한 여성들이 힘을 가지려면, 내면 가부장의 장점을 취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성들이 가부장의 자아와 가모장의 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애쓰면 궁극적으로는 여성의 힘이 더 커질 수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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