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범죄로 생지옥이 된 고향을 등진 중남미 불법이민자들이 하루 평균 2,200명씩 몰려들면서 미국ㆍ멕시코 국경 일대가 영아 사망률과 성범죄가 급증하는 삶의 사각지대로 전락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국경 봉쇄 정책에도 불구, 갱단의 폭력과 마약 범죄, 빈곤 때문에 모국을 탈출한 사람들이 미국ㆍ멕시코 국경지대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만, 수용 시설이 포화상태에 도달해 병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고 여성과 아동을 상대로 하는 성범죄가 빈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올 들어 지난달까지 남서부 국경을 불법 월경하다가 적발된 인원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보다 두 배나 늘어난 7만6,000명에 달했다. 또 이민세관집행국(ICE)에 구금된 성인 불법이민자도 5만명 이상으로 사상 최대에 달했다.
케빈 맥알리난 CBP 국장은 “(정부 시설의) 수용력을 한참 넘어 한계에 다다랐다”면서 “국경 안보 문제인 동시에 인도주의적 위기 상태다”라고 호소했다. 불법이민자 추방을 위한 재판이 밀린 건 당연하고 법정 구금 기간이 지난 뒤 정부 시설에서 방출된 이주민들을 주변 지역의 자원 활동가들과 구호 단체, 임시 진료소 등에 떠맡기는 실정이다.
특히 가족 단위 이주가 늘면서 미 이민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과거 밀입국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남성 홀로 월경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어린 자녀와 함께 국경을 넘어 이들이 급증, 불법 월경자라도 미성년자는 특별히 대우토록 규정한 망명법 규정 상 이들을 쉽게 추방하기 어렵게 됐다. 그렇다 보니 본래 짧은 기간 구금할 목적으로 만든 콘크리트 독방에서 아이를 둔 가족이 생필품과 의료 조치가 미비한 상태로 며칠을 버티는 상황이 빈발하고, 이 과정에서 인권유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NYT는 지난해 12월 시설에 구금돼 있다가 사망한 7세, 8세 아동 2명의 죽음을 소개하면서 정부 수용 시설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지적했다. 이 신문은 그 이전에도 CBP에 구금된 성인 6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불법 월경자들이 장기간 여행으로 면역성이 떨어지는 바람에 수두 같은 전염성 질환이나 천식, 당뇨 같은 만성 질환에 걸리는 경우도 문제다. 간신히 미국 땅을 밟아도 수용시설에서는 인력과 자원 부족으로 응급처치가 제때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NYT는 조산한 산모를 아이와 방치하거나, 성폭행을 당한 후 하혈하는 이주민 여성을 아무런 조치 없이 내버려두는 경우도 발생했다고 전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미 당국은 대책을 내놨다. 맥알리난 국장은 모든 이주민 아동에 대한 건강검진을 포함한 필수 의료 서비스 제공과 의료진 확충, 통역 서비스 등을 위해 자금을 더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NYT는 이주민, 인권단체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이주 여성과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주 과정을 전후로 국경 지대에서 이주 여성들이 브로커에게 맞는 것은 예삿일이고, 감금 당한 채 임신ㆍ매춘을 강요당하는 등 성범죄과 인권 유린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확인된 사건 중 최소 5건은 CBP 공무원에 의한 범죄였다고 NYT는 덧붙였다.
NYT는 “지난 20년간 미등록 이주 여성에 대한 100건 이상의 성범죄를 문서로 확인했다”면서 “이는 새발의 피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신고ㆍ수사ㆍ기소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인데, 피해자들의 불법 이민자라는 취약한 지위를 악용해 당국에 신고한다거나, 자식을 인신매매 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탓이다. 피해 여성들의 변호를 맏아 온 헤수스 로모 변호사는 NYT에 “그들이 스스로를 지킬 방법은 거의 없다”면서 “미등록 이주 여성들과 아이들은 인류 중 가장 취약한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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