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 ‘카드공제 축소’ 첫 공식화
“소득 제자린데 실질 증세” 불만 확산
‘보편 증세’ 예고편, 납세자 반응 주목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드디어’ 신용카드 소득공제(카드공제) 축소를 거론하고 나섰다. 지난 4일 제53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다. “카드공제 축소 방안을 검토하는 등 비과세ㆍ감면제도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맘때면 매년 8월쯤 발표되는 정부의 세제개편안 준비가 본격화한다. 따라서 홍 부총리의 언급은 사실상 올해 세제 개편에서 카드공제를 축소하겠다는 선언으로 봐도 무방하다.
글머리에 ‘드디어’라는 표현을 쓴 의미는 여러 가지다. 우선 카드공제 제도는 언젠가는 조정이 필요한 문제였다. 1999년 제도 도입 이래 20년 간 유지돼왔지만, 기본적으론 ‘조세특례제한법’ 상 일몰조항으로 운영돼 시한이 되면 일몰을 연장하는 게 그 동안 8차례나 되풀이 됐다. 현행 제도 일몰 시한은 올해 말이다. 따라서 올해 세제개편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카드공제 제도는 단순히 일몰시한만 따질 사안이 더 이상 아니다. 20년 간 시행되면서 이미 직장인들에겐 가장 체감도 높은 항구적 세제혜택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업의 투자나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한 세제혜택처럼 개인도 의당 받아야 할 세제감면이라는 인식도 크다. 지난해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국민이 카드공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하고 있어 급속한 공제축소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낸 배경이다.
때문에 홍 부총리가 제도 축소 방침을 공표한 건 정부가 ‘드디어’ 저항과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세금을 늘리는 쪽으로 한 발 더 움직인다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사실 복지 확대와 부의 재분배 강화 등의 필요에 따라 정부는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 때부터 조세감면 축소를 통한 실질 증세를 거듭해왔다. 그리고 ‘큰 정부’ ‘보편적 복지’ ‘적극적 재정 확대책’ 등을 추구하는 현 정부 들어 증세 필요성이 더 높아짐에 따라 마침내 가장 민감한 개인 소득세로까지 조세감면 축소를 감행하기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납세자들이 카드공제 축소를 수긍할 지다. 선거에서 문재인 정부 뽑아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한다면 할 말은 별로 없을지 모른다. 직접 증세도 아닌데다, 카드공제 축소 대신 ‘제로페이’ 공제를 늘려주면 되는 것 아니냐 하면 할 말은 더 적어질 수 있다. 하지만 카드공제가 크게 축소되거나 일몰되면, 일 년에 한 번 연말정산을 거쳐 다만 몇 십만 원이라도 쌈짓돈 챙기는 재미와 위안을 잃게 되는 약 1,400만 직장인들의 집단 박탈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증폭될 수 있다.
가뜩이나 그 동안 여기저기 비과세ㆍ감면 축소로 야금야금 세금 부담이 늘어나 국민소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인 조세부담률이 2013년 17.9%에서 지난해엔 20%까지 높아졌다. 거기에 사회보험료와 각종 세외부담금 인상까지 감안하면 직장인들이 느끼는 지출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반면 가구당 실질소득은 최근 6년 간 평균 0.98% 오르는데 그쳤고, 그 조차도 저소득가구에 대한 이전소득(정부 지원금)분을 감안하면 평균적 직장인 소득은 제자리걸음한 셈이다.
그 결과 가계 실질처분가능소득은 2015년 4분기(0.8%)를 끝으로 계속 줄고 있다. 특히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1분기부터 2018년 1분기까지 분기별 실질처분가능소득 감소율은 3~5%를 오갈 정도로 커졌다. 그러다 보니 가뜩이나 ‘유리지갑’으로 불릴 만큼 조세혜택이 적은 직장인들로선 그나마 위안이던 카드공제 혜택까지 잃는다는 게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벌써 “유리지갑만 봉이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카드공제 축소는 실질적 증세이며, 서민ㆍ중산층 근로자의 삶을 더 힘들게 할 것”이라며 반대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어떻게든 장기 세수기반을 넓혀야 하는 정부로서는 조세감면 축소가 절실하겠지만, 대부분 직장인들로서는 카드공제 축소가 더 이상의 실질 증세, 나아가 ‘보편 증세’까지 수긍할지 말지를 가를 선택의 기로가 될 것 같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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