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의 정의를 안다면 김수영이 단 한 번도 민족주의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은 더 이상 논의 사항이 아니다. 물론 그가 쓴 시에 ‘민족’이라는 단어가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곧바로 그를 민족주의로 인도하지는 않는다. 민족주의를 번번이 혐오했던 그는 진정 아름다운 시어(詩語)는 “반드시 순수한 우리의 고유의 낱말”일 필요가 없다면서 “민족주의의 시대는 지났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 회 칼럼에서 “민족주의ㆍ민중ㆍ참여시와 대척에 있는 김수영의 세계시민주의는 아직 제대로 탐구되지 않았다”던 나의 주장은 주목받지 못한 그의 특질을 강조해 본 것이다. 김수영은 민족ㆍ민중ㆍ참여시를 품고 고민을 했지 그것과 대척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단순한 외부의 정치세력의 변경만으로 영혼이 구제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민중 개념이 “세계의 일환으로서의 한국인이 아니라 시대착오의 렌즈로 들여다본 미생물적 한국인”에 머물러 있는 것을 위태롭게 여겼다는 것, 또 그에게 참여시는 시의 “종점이 아니라 시발점”이었다는 것을 놓치게 될 때 김수영은 코끼리 다리가 되고 만다. 하지만 이런 것은 이번 칼럼의 주제가 아니다.

아일랜드의 삼총사라는 오스카 와일드ㆍ버나드 쇼ㆍ제임스 조이스는 모두 영어로 글을 썼다. 이들은 영문학으로 간주되지만, 일본의 문학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우리가 보통 ‘영문학’ ‘영문학’ 하지만, 어떻게 보면 영문학이란 실은 아일랜드 문학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들 작품에 공통된 패러독스ㆍ아이러니ㆍ모순어법은 식민지 지식인의 복수였다. 그들은 그런 방법으로 식민 종주국인 영국의 교양과 문학 전통을 조롱하고 전복했으며, 영어 자체를 비틀고 오염시켰다. 실로 제임스 조이스 이후 영문학은 더 이상 새커리나 디킨스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가라타니와 똑같은 논리를 먼저 펼친 사람이 김수영이다.

김수영은 ‘불발 사건’이 되고만 문제의 시작노트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작품을 쓴 이상(李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상이 일본적 서정을 일본어로 쓰고 조선적 서정을 조선어로 썼다는 것이다. 그는 반대로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함으로써 더욱 철저한 역설을 이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수영의 전략대로라면, 일본어로 쓰면 친일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본어로 쓸 때 ‘민족’이 더 잘 드러나게 된다.

일제 통치 36년 동안 일본어로 작품을 쓰고 발표한 작가는 의외로 많다. 우리는 그들의 행적에 배반감을 느끼며 질타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식민 치하에서 잘도 일본어로 글을 썼군!’ 그러나 이제는 그런 단순논리보다, 우리에게는 왜 아일랜드의 삼총사와 같은 작가가 없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삼총사가 있었다면, 세 번째 노벨문학상을 노리고 있는 일본을 향해 제3국의 평론가들은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일문학’ ‘일문학’ 하지만, 일문학이란 실은 한국 문학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이번 칼럼의 주제는 아니다.

작년은 김수영 시인의 사후 50주기가 되던 해였다. 추모 사업의 일환으로 1981년 초간된 ‘김수영 전집’(민음사)의 두 번째 개정판과 몇 권의 헌정 문집이 나오고, 여러 학술회의도 열렸다. 어느 노회한 평론가는 “나는 금번 50주기 사업이 김수영론(論)에서 김수영학(學)으로 전환하는 겸허한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설레발을 쳤지만, ‘김수영 붐’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났다. 이 계면쩍은 사례는 2008년 초, 일본 독서계를 강타했던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붐과 비교된다. 1929년에 발표된 ‘게 가공선’은 작중의 선상 노동자들이 겪는 살인적인 노동조건이 비정규직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만 오늘의 일본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며 50만부나 넘게 팔려나갔다. 청년ㆍ대중이 붐을 일으킨 ‘게 가공선’과 달리, ‘김수영학’은 학자들의 인공호흡으로 연명한다. 해마다 박사논문이 쏟아지지만 대중은 전혀 읽지 않는 이광수와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나쓰메 소세키는 한국과 일본의 어떤 문화적 차이 때문일까? 틈나는 대로 연재를 이어가겠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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