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주의의 미덕은 타협과 합의에 있다. 협력 정치의 대표적인 전통은 초당 외교다. 냉전 초기이던 1947년 아서 반덴버그 상원 외교위원장이 민주당 트루먼 정부에 초당적 협력을 약속하며 “정치는 국경에서 멈춘다”고 했다. 국경선 너머로 당파 정치를 끌고 가지 않겠다는 그의 말은 지금도 협치의 상징으로 인용된다. 공화당 소속인 반덴버그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유력한 경쟁자였다. 60년대에는 공화당이 민주당 정부에, 70~80년대에는 민주당이 공화당 정부에 그렇게 협력했다.
□ 양당의 초당적 지원 속에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협치 전통은 90년대 들어 흔들렸고 2000년대 이후에는 거의 목격되지 않고 있다. 결과만 보면 9ㆍ11 테러는 미국 정치에 대한 테러였다. 민주, 공화 양당에 가장 절실한 문제가 타협과 합의의 복원일 만큼 정치는 분열로 치달았다. 최근 사례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발생했다. 정상회담 당일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트럼프의 전 개인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증언대에 세워 고객의 숨겨진 사실을 폭로하게 했다.
□ 인도와 파키스탄이 70년 만에 공중전을 벌이고, 북미 정상이 핵 담판을 할 때도 미국의 관심은 코언의 입을 벗어나지 않았다. 코언의 증언이 하노이 회담의 ‘노딜’ 배경인지 알 길은 없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코언 청문회를 “미국 정치의 새로운 저점”이라며 “이것이 (내가 하노이 회담에서) 걸어 나온 것에 기여했을 수 있다”고 코언 청문회가 회담 결렬에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분열의 미국 정치에서 초당 외교의 전통보다 먼저 붕괴한 것은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였다. 공화당은 복음주의, 근본주의를 따르는 종교적 우파와 극우가 온건 성향의 전통적 중도를 밀어내고 있다.
□ 중도 자유주의와 좌파 진보주의가 충돌한 민주당 분열은 공화당보다 심하다. 민주 좌파는 보호무역과 큰 정부를 지지하고 외교정책에서는 고립주의에 가깝다. 이들은 지난 대선에서 화해하지 못한 채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급진적 색채가 짙어지는 민주당을 향해 트럼프는 지난 2일 연례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연설에서 미국판 색깔론인 ‘사회주의’라는 올가미를 던졌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분열에 빠져드는 미국 정치권이 세계의 현안, 특히 한반도 문제에 계속 관심을 유지할지 걱정스럽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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