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서적 3만 여권 한꺼번에 구매, 운반비만 500만원 든 적도
“세상에는 미친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그 중 한 명이지요.”
허두환(59)씨는 2014년 7월 아트도서관(수성구 만촌동)을 개관했다. 라이브러리, 아카이브, 라카비움역할을 하는 미술전문도서관이다. 이중 라카비움은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로, 세 가지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이행하여 이용자에게 다양한 정보자원을 제공하는 기관을 의미한다.
약 500㎡ 공간에 미술서적 11만 권과 순수미술과 디자인, 고미술 등 장르를 망라한 각종 예술품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다. 처음 방문한 사람은 으레 눈이 휘둥그레진다. 개인이 이렇게 많은 미술 서적을 보유한 것은 국내에서 유일하고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주인장 허씨는 수집에 미친 편집광이다.
“특별히 아끼는 책요? 공간의 한계성으로 방치된 책도 많지만 제게는 한권 한권이 모두 소중합니다.”
지금껏 수집한 서적 중 희귀본, 한정판은 귀한 몸이라 특별대접을 받기도 한다. 값도 값이지만 내용이 국내 도서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귀한 자료들이라 가치를 매기기가 힘들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소묘집’은 영국왕실 보관품으로 1985년 일본에서 300부 한정판으로 출판되었다. 판매가격은 128만 엔이다. 시대를 거슬러 거장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소장만으로도 가치 있는 도서다. ‘HOLY BIBLE’ 한정판은 삽화가 들어간 성경책이다. 현재 2,000만원의 가치가 있다. ‘모던아트’는 가로1m 세로70cm 크기의 2,000부 한정판이다. 앤디 워홀 등 19세기 유명 작가 360명의 작품이 수록된 대형 화보로 원작 크기에 가깝게 제작되었다. 20년 전 국내에 런칭되어 880만원에 판매되었다. 생생한 터치와 질감을 느낄 수 있어 미술학도들이 열광하는 책이다. 허씨는 외국서적 딜러로 일한 덕에 이 책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수집보다 관리가 문제
갤러리 관장을 역임하며 예술품도 소장하게 되었다. 수집품은 삶의 기록이자 가치이며 철학이 되었다. 허 씨는 종갓집 종부가 옛 가옥을 지키듯 매일 책과 미술품을 닦고 정리하고 기록한다. 그는 자칭 도서관 집사다. 도서 분류 작업과 미등록 미술서적 등록과 관리, ISBN(국제도서표준번호) 고유 번호 부여 등록절차 및 대구ㆍ경북 작가를 대상으로 아카이브(미술기록물 보관서) 구축 등 할 일이 태산이다.
“지키고 보관하지 않으면 미래문화유산인 지금의 자료는 다 사라집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요. 사명감이라면 거창하고 숙명이라 생각합니다.”
허씨는 1989년 30대 초반에 '아카데미서적센터'를 창업했다. 외국서적을 수입해서 대학, 연구소 등에 납품했다. 수입이 괜찮았다. 여윳돈도 생겼다. 도서관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꿈을 좇기 시작했다.
2006년 ‘주노아트 갤러리’를 개관했다. 5년 동안 적자운영을 면치 못했다. 결국 건물을 팔아 빚잔치를 했다. 비싼 수강료가 들었지만 그는 더 이상 범부가 아니었다. 무지개는 그의 주변 저만치에 계속 떠 있었다. 현실보다는 부지런히 무지개를 쫒아 갔다. 도서관을 만들어 책과 예술품을 사회에 환원하는 문화 사업이 목표였다. 그러나 장서를 지키자니 건물 3채가 날아갔다. 결국 부채를 안 집사람이 팔을 걷어붙이고 현실로 나왔다. 부인 정순금(53ㆍ아트북카페 대표)씨는 지난해 1월 아트도서관 안에 아트북카페를 오픈했다. 수입이 절실했던 까닭이었다.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가장으로서는 꽝이니 말입니다.”
◇평생 헌신해도 다 못 할 일
2010년부터 전국 외국서적 거래소에 ‘허 관장이 미술서적 사 모은다’고 소문을 냈다. 2012년 서울서 연락이 왔다. 인사동에 있는 ‘미술자료공사’라는 오래된 서점이었다. 3만 여권의 국내미술서적을 인수하라는 말에 그 자리에서 2.4톤 트럭 11대를 불렀다. 운반비만 500여만원이 들었다. 그날 아트도서관 앞 소방도로에는 트럭이 줄지어 서 있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누군가에게는 쓸 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한 책을 부둥켜안고 허씨는 설렘과 행복에 젖어 밤을 새웠다.
“도서관 사업은 개인이 하기 힘든 일입니다. 모았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이 정도 규모라면 사서를 포함해 10여명의 직원이 있어야 유지 관리가 됩니다. 도서관은 살아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책은 계속 나옵니다. 이 일은 평생 해도 못 할 일입니다. 나는 언젠가 죽을 거니까요. 나처럼 미친 누군가가 꿈을 꾸고 있기를 기대합니다, 하하!”
강은주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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