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 메시지를 보내 기소된 남성이 재판 과정에서 피해 여성의 나체 사진을 제출해 추가로 고소당했지만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려 논란이다. 피해자와 여성단체들은 “가해자 중심의 편파수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5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이 남성 가해자 중심의 편파 수사를 하고 있고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처분을 내렸다”고 규탄했다.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따르면 A씨는 2016년 5월 성관계를 요구하며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 B씨의 옷을 강제로 벗겼다. B씨가 강하게 거부한 뒤 침대에 엎드려 울자 A씨는 B씨의 나체를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이를 알아차린 B씨가 항의했고 A씨는 사진을 지우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이후 A씨는 성적인 내용의 메시지를 계속 보내며 B씨를 괴롭혔고 2016년 7월 고소당해 벌금형 선고를 받았다. 벌금형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A씨 휴대폰 속 나체 사진이 지워졌을 거라 믿었던 B씨는 이 사건 재판 과정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A씨가 “나와 B씨는 평소 성적인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만큼 친밀하게 지내던 사이”라고 주장하며 증거로 B씨의 나체 사진을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B씨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자 A씨는 오히려 나체 사진을 더 선명한 화질로 출력해 거듭 제출했다. B씨는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A씨를 추가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12월 불기소 처분했다.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공개한 검찰의 불기소 이유 통지서에는 “고소인이 정말 성폭행 당할 것이 두려웠다면 신고를 하거나 모텔을 빠져 나왔어야지 나체로 침대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고, 만약 이 사진이 불법 촬영물이라면 이렇게 쉽게 증거로 제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B씨는 상급 검찰청에 즉각 항고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이진선 활동가는 “성폭력 상황에 처하게 된 피해자는 공황에 빠지거나 몸이 굳어 아무 대응을 못하기도 하기 때문에 가해자의 행동을 통해 성폭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에 따르면 해당 사진은 불법 촬영물이고, 설령 합의하에 촬영한 사진이라도 당사자 동의 없이 제출한 경우 여성의 입장에선 유포와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B씨는 호소문을 통해 “담당 검사의 불기소 처분으로 난 사진을 파기하거나 삭제할 수 없게 됐고, 그 사진이 가해자의 휴대폰이나 클라우드, 이동식 저장장치 등에 보관돼 언제 악용ㆍ유포될지 모르는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B씨는 “불법사진 한 장만으로도 처벌하는 나라가 돼야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성범죄를 근절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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