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핵 내주고 제재 전면해제 노려… 대북강경파 목소리 다시 힘 실려
북한이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 시설 폐기 대가로 사실상 전면적인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바람에 미국에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하노이 회담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을 거듭 압박하고 나선 것도 이런 사정 때문으로 분석된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일(현지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 “매우 제한된 양보로 노후화된 원자로와 농축,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의 일부분만 포함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빅딜을 수용하도록 설득했지만 그들은 그럴 의사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북한의 핵 연료 생산이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에 “정확히 맞다”며 “그들은 그것을 계속해 오고 있다”고 인정했다. 북한이 영변을 폐기하더라도 다른 핵 연료 생산 시설이 존재하는 한 완전한 비핵화 과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미 고위 당국자도 하노이 회담 결렬을 설명하면서 영변 핵 시설 폐기 대가로 사실상 전면적인 경제 제재 해제를 요구한 북한 제안에 대해 제재 해제 시 수십억달러의 돈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지원될 수 있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초기 단계인 모든 핵 연료 생산 시설에 대한 동결조차 동의하지 않은 채 전면적인 경제 제재 해제를 요구하자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강하게 불신하게 된 것이다.
하노이 회담에 앞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비핵화 협상의 동시적 병행적 원칙을 밝히면서 그간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주장해 온 북한과의 절충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북한이 지칭한 ‘단계’가 완전한 비핵화를 보장하지 못하는 제안이라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 고위 당국자가 하노이 회담 전에 회담 의제로 밝혔던 핵심은 비핵화 개념, 로드맵, 핵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이었다. 미국 역시 단계적 접근법을 받아들여 이번 협상에서 WMD 동결을 첫 실행 조치로 합의하되 신고 검증 폐기 등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계산이었다. 완전한 비핵화의 지도를 그린 다음 단계적 과정을 밟자는 뜻이다.
반면 북한이 제안한 단계적 과정은 풍계리 핵실험 폐기,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폐기에 이은 영변 핵 단지 폐기였다. 북한은 대신 핵 프로그램 목록에 대한 신고는 완강히 거부해 왔고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도 거부했다. 핵 프로그램 전모는 숨긴 상태에서 시설별 폐기로 상응조치를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약속이 없는 이 같은 협상은 완전한 비핵화가 북한의 자의적 조치에 좌우된다는 게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북한이 특히 영변 핵 시설 폐기 대가로 사실상 경제 제재에 대한 전면 해제를 요구한 만큼 이에 합의할 경우 추가 핵 미사일 프로그램 폐기는 그야말로 북한의 선의 외에는 보장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핵 프로그램 전모를 숨길 뿐만 아니라 영변 이외의 핵 시설에 대해 침묵하는 북한의 태도를 두고 핵 무기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NCND) 이스라엘의 핵 보유국 전략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기자들과 잇단 인터뷰를 가지면서 영변 이외 핵 시설을 묻는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답변을 피했다.
이 같은 의구심으로 미국에선 대북 강경파인 볼턴 보좌관이 다시 대북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을 압박하는 비핵화 협상 초기 단계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제재가 북한에 실질적 충격을 주고 있다는 판단으로 경제 회복이 절실한 김 위원장이 종국에는 비핵화 결단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를 남겨 두고 있는 모습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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