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강경대응에 239곳만 동참… 이덕선 이사장 사퇴 시사
통학버스 대신 택시, 맞벌이는 반차 내고… 학부모들 울분
학부모들의 큰 혼란을 초래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소속 사립유치원들의‘개학연기’ 투쟁이 하루 만에 막을 내렸다. 정부가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데다 ‘아이들을 볼모로 삼는다’는 여론이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유총은 4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개학연기 준법투쟁을 조건 없이 철회한다”며 “5일 부로 각 유치원은 자체 판단에 의해 개학해 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부모들의 염려를 더 이상 초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철회 배경을 설명했다.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사립유치원의 운영, 자율권 그리고 사유재산권 확보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얻지 못한 것 같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통감해 수일 내로 거취 표명을 포함한 입장을 발표하겠다”며 사퇴를 시사했다.
한유총은 국가회계관리시스템인 에듀파인 도입을 포함한 교육부의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정책에 반대하며 이날부터 무기한 개학연기 투쟁에 돌입했다. 이날 오전 11시까지만 해도 학사 일정 변경은 합법적인 ‘원장의 권한’이라며 개학연기를 강행하겠다던 한유총의 입장은 6시간 만인 오후 5시께 반전됐다. 이 같은 입장 변화는 한유총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이들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여론이 고조된데다 정부가 과거와 달리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즉시 고발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경 대응을 예고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하루 만에 개학연기에 동참하는 유치원 수가 급격히 줄어들며 투쟁 동력이 약화한 것도 백기를 든 배경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전날 오후11시 기준 개학연기에 동참한다고 밝힌 사립유치원은 총 365곳이었으나 이날 낮12시에는 총 239곳으로 줄어들었다. 전체 사립유치원(3,875곳)의 6.2%에 그치는 저조한 수준이다. 서울만 해도 같은 기간 개학연기를 예고한 유치원은 26곳에서 12곳으로 급감했다. 한유총은 동참하는 사립유치원 수가 1,533곳에 이를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특히 239곳 중에서도 자체 돌봄, 즉 맞벌이 부부들을 위한 돌봄 교실을 제공하는 유치원은 221곳, 그마저도 제공하지 않은 곳은 18곳이다 보니 ‘보육대란’은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다. 시도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된 긴급돌봄 신청은 821건이었으나 이날 긴급돌봄을 이용한 유아는 308명으로 집계됐다.
한유총의 전격적인 개학연기 철회에도 불구하고 교육당국은 한유총에 대한 강경대응의 고삐를 더욱 죄었다. 권지영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장은 “아이들을 볼모로 단체행동을 하는 단체와는 어떤 협상도 없다”며 타협 불가 입장을 내놨다. 실제로 교육부는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 239곳에 이날 시정명령을 내렸다. 또 다음날 이 유치원을 재방문한 뒤 여전히 개학을 하지 않을 경우 즉시 형사고발에 나선다는 계획이었다. 교육부는 한유총의 개학연기 철회에도 이번 개학연기를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불법 단체행동으로 판단, 예정대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다는 입장이다. 5일에도 경찰∙주민센터∙교육(지원)청 공무원들이 3인 1조로 현장 점검을 계속해 실제 개학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한편 사단법인 한유총의 설립허가 권한을 갖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은 한유총의 개학연기 철회 방침과는 별개로 한유총의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하기로 했다. 교육당국이 이처럼 강경대응을 철회하지 않은 까닭은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ㆍ사립학교법ㆍ학교급식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한 한유총의 공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보육대란은 없었지만 4일 일부 사립유치원들이 개학연기를 강행하면서, 해당 유치원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학부모들은 이른 아침부터 혼란을 겪었다. 개학연기에 동참한 유치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A유치원 돌봄 교실에 아이를 맡기고 돌아가던 한 학부모는 “맞벌이 부부라서 많이 불편하다”며 “오늘 반차 쓰고 오후2시에 데리러 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질지 모르는데 도대체 반차를 몇 번이나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길어지면 유치원을 옮겨야 할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해당 유치원은 개학 하루 전날 학부모들에게 개학연기를 통보하고 돌봄 교실만 운영하겠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경기 용인 수지구에 위치한 B유치원도 이날 개학연기에 동참했다. 이 유치원 학부모는 “혹시나 몰라 오늘 휴가를 냈었는데 마침 돌봄으로 운영한다기에 아이를 데리고 왔다”며 “문제는 내일인데 아직 유치원으로부터 어떻게 한다는 통보를 받지 못한 상태여서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돌봄 교실은 운영해도 통학버스는 운영하지 않다 보니 등원에 어려움을 겪는 보호자들도 많았다. 오전 8~9시 사이 서울 강남구 도곡동 A유치원 돌봄 교실을 찾은 20명의 원아들은 모두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등원했다. 택시를 이용하는 학부모도 눈에 띄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유치원 등원 때문에 출근시간에 조금 늦겠다고 회사에 말했다”며 두 딸을 바삐 맡긴 뒤 돌아갔다. 맞벌이인 딸 부부 대신 손녀를 등원시키던 할머니는 “아이들 볼모로 유치원이 이러면 안 되지”라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개학연기 유치원 숫자가 예상보다 적었기 때문인지 긴급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국공립유치원들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경기 수원시 세류초 병설유치원은 개학을 연기한 인근 4곳의 사립유치원 원아들에게 긴급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곳이지만 이날 등원 시간대에 한산했다. 하루 전인 3일까지 모두 15명이 신청했지만 이날 오전 유치원에 긴급돌봄으로 등원한 아이는 3명에 불과했다. 세류유치원 관계자는 “돌봄을 신청한 엄마들에게 전화해 보니 개학은 연기했지만 자체 돌봄을 운영 한다는 말에 원래 유치원으로 보냈다고 들었다”며 “또 일부는 오늘 휴가를 내 내일 돌봄으로 보내겠다는 부모도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개학연기에 나선 유치원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던 용인 지역도 긴급돌봄 서비스를 찾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용인 지역은 전체 75개 유치원 중 절반 가까이가 개학연기를 밝히는 등 타 지역에 비해 강하게 반발해 온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36곳이 정상 개학했고, 39곳이 자체 돌봄을 운영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박진만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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