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성형의 핵심 의약품인 보톡스의 원료를 둘러싸고 4년째 이어지고 있는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난타전’이 세계 시장으로 확대됐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식품의약국(FDA)까지 개입하면서 두 토종 기업의 싸움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메디톡스가 다국적제약사 엘러간과 함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대웅제약과 에볼루스(대웅제약의 미국 내 판매 협력사)의 불공정 행위를 제소한 것과 관련해 ITC가 공식 조사를 실시하기로 지난 1일 의결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이번 ITC 조사를 통해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지적재산권을 탈취해 ‘나보타(대웅제약의 보톡스 제품명)’를 개발했음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철저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웅제약도 이날 오후 신속히 대응 자료를 내고 “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미국에서 기업들이 경쟁 제품이 출시될 때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전형적인 시장방어 전략의 일환”이라며 ITC 제소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거라고 주장했다. 또한 대웅제약은 “근거 없는 주장에 대해 상대방(메디톡스)에게 무고의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고 덧붙였다. 나보타가 FDA 판매허가를 받고 미국 시장에 먼저 진출하게 되자 메디톡스가 이를 방해하려는 의도라는 게 대웅제약의 시각이다.
한 치의 물러섬 없는 양사의 공방은 2016년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촉발됐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나보타 제조에 자사 보톡스 제품 ‘메디톡신’의 원료인 보툴리눔균과 유전자가 일부 동일한 균을 사용하고 있는데,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메디톡스와 미국 위스콘신대, 엘러간이 공동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 정보를 대웅제약이 몰래 활용했다는 것이다. 주름 개선용으로 쓰이는 보톡스는 보툴리눔이란 세균이 생산하는 독성물질로 만든다. 이에 대해 대웅제약은 나보타 원료인 보툴리눔균을 자체 기술로 국내 토양에서 미량 추출한 뒤 제품 생산용으로 다량 배양했다고 반박했다.
이후 메디톡스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사 보툴리눔균의 유전자를 공개했고, 2017년에는 보툴리눔균의 출처를 밝히라는 내용을 담은 TV 광고까지 내보내며 대웅제약을 압박했다. 당시 대웅제약은 또 다른 국내 보톡스 제조사 휴젤과 함께 경쟁사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중단하라며 반발했었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휴젤은 국내외 보톡스 시장의 강자들이다. 약 1,000억원(2017년 기준) 규모의 국내 시장은 메디톡스와 휴젤이 양분하고 있고, 대웅제약은 가장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미국 시장은 약 4조5,000억원 규모인 전 세계 보톡스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앞서 2017년 12월 메디톡스는 FDA에 나보타의 보툴리눔균 출처가 확인되기 전까지 허가를 내주지 말라고 요구하는 시민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FDA는 이를 거부하고 대웅제약에 지난달 허가를 내줬다. 나보타 심사 과정에서 부정 행위를 발견하지 못했고, 보툴리눔균의 전체 유전자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게 FDA의 청원 검토 결과였다고 대웅제약 측은 설명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ITC 소송 역시 FDA 청원 결과와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나보타는 예정대로 올 봄 미국에서 발매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메디톡스는 ITC 제소가 FDA 청원과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입장이다. “과학적 관점으로 판단하는 FDA와 달리 ITC는 기술 탈취나 특허 침해 여부 등을 판단한다”며 “다른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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