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지하수 이용 농가 직격탄, 공도교 차질 땐 교통 불편, 관광산업 악영향 우려”
“설치할 때도 주민 동의 없이 추진하더니 철거 결정도 주민 의견은 배제하고 있으니 화날 만도 하지요.”
지난달 27일 오후 2시 5분쯤 충남 공주시 우성면 평목리 공주보에서 만난 한 주민은 공주보 해체를 결정한 정부의 방침에 울분을 터뜨렸다. 이날 웅진동 방면 백제큰길 3거리와 보 건너편 한국수자원공사 공주보사업소 주변 가드레일과 가로수 등에 ‘공주보 해체 철거 반대’라고 쓰인 현수막 수십 여개가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심지어 ‘공주보 해체하려는 환경단체부터 폭파하라’는 험악한 글귀도 보였다.
이들 현수막은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조사위)가 지난달 22일 금강과 영산강의 보 처리와 관련, 공주보 부분 해체안을 제시하자 공주시민과 인근지역 농민들이 내건 것이다.
주민들은 조사위가 보의 홍수ㆍ가뭄방지 효과가 있다는 조사결과와 공주시민 절반이상(51%)이 보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지난해 12월 여론조사 결과 등을 외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설치 때도 그랬듯, 철거과정에서도 주민 의견을 철저히 외면한 정부의 방침에 화가 단단히 났다.
주민의견 수렴을 위한 공주보 민ㆍ관협의체도 형식적이었다고 비판한다. 지난해 11월 1차, 지난 1월 2차 회의에 참석한 민간위원이 1~5명이 불과해 민간위원을 추가 추천해 회의를 열기로 했는데 조사위가 기습적으로 보 철거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투쟁위 윤응준(54ㆍ평목리 이장) 사무차장은 “보를 만들 때도 주민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더니 해체한다는 결정도 주민들은 안중에 없이 일방적”이라며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3~5년 정도 모니터링하고 연구도 한 뒤 합리적으로 논의해 결정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전문가가 아닌 이상 보 철거로 인한 구체적인 피해를 추산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공주보 주변에서 지하수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공주보를 철거하면 보 건설 때 강바닥을 5~8m파내 수위가 내려간 만큼 강물 수위가 낮아지면서 지하수 수위도 함께 낮아질 거라고 우려한다.
오석주(48) 공주 우성면시설원예작목회장은 “작목회에 소속된 101개 농가가 수막농사(비닐하우스 보온에 지하수를 이용하는 농법)를 짓고 있는데 보를 철거하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들여 관정을 더 파야 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시설하우스에는 1동당 대개 하루 채수량 100톤 가량인 소형 관정 1곳이 필요하고, 뚫는데 한곳당 500여만원이 필요하다. 오 회장은 “지하수는 한정돼 있는데 관정을 더 많이 뚫으면 물이 빨리 고갈되고 영향이 인근 다른 농가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지하수 문제는 조사위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조사위는 이달부터 지하수 전수조사를 해 이용현황을 파악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대체 관정 개발 등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농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주민들은 교통도 불편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공주보 상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차량이 오가는 공도교다. 조사위는 주민들의 교통권 보장을 위해 공도교를 유지하고 부분 해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안전등급이 C등급으로 가뜩이나 낮은데 부분 해체를 하면 더 나빠지는 게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다. 공도교 통행이 안되면 공주시청과 의료원 등이 있는 구도심으로 가기 위해 먼 곳으로 돌아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공주시 관계자는 “공도교 통행량은 평일 5,000여대, 주말 3,500여대인데 이들 차량이 공도교를 이용하지 못하면 4㎞ 정도를 돌아 구도심으로 넘어가야 한다”며 “최소 10~20분, 교통이 혼잡할 때는 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산업에 미칠 영향도 우려하고 있다. 보를 해체하면 보의 물을 이용한 백제문화제의 들불향연(부교, 유등 등) 프로그램을 못하고 수변 경관도 나빠진다는 것이다. 최창석 공주문화원장은 “백제문화제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축제의 하나고, 등불향연은 다른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며 “보를 철거하면 아예 행사를 못하게 되고, 공산성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수변경관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출신 단체장들도 신중한 처리를 주문하고 있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농업용수 부족 등 우려되는 문제에 대해 “‘선 대책 후 해체’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고, 김정섭 공주시장도 “항구적 농업용수 확보 등의 대책이 없으면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 보 철거 찬성 여론도 나오면서 주민간 대결도 우려되고 있다. 공주참여연대와 전교조 등 15개 시민사회단체는 “공주보 문제는 정치 영역이 아닌 합리적 정책의 영역”이라며 “찬반 양론으로 갈라진 지역 갈등을 진화하고, 합리적인 보 처리 방안을 찾기 위해 공론화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토목공학자인 허재영 충남도립대 총장은 “지금 주민들이 반발하는 모습은 보 해체방안을 발표하기 전에 충분한 대화가 부족했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4대강 건설은 일방적으로 추진했지만 이를 바로잡는 방안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과 충분한 협의를 하고 결정이 잘못됐다면 번복도 할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주=이준호기자 junhol@hankookilbo.com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