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서 퇴직 후 새 삶 꾸리는 이재헌씨
※ 은퇴 이후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삶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는 우아하고 품격 있게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일평생 열중할 일과 어학, 운동, 악기를 각각 한가지 잘하고 신앙생활을 하자.”
퇴직 후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이재헌(66)씨의 책상 머리맡에는 이런 내용의 글귀가 붙어있다. “우선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외국어 하나 이상을 유창하게 하자, 운동도 한 종목을 제대로 해 심신을 단련하고 악기도 하나 다뤄 정서적 안정감을 갖자, 마지막으로 종교를 가져 늘 겸손한 마음을 지니며 살자는 뜻입니다.” 30대 초반의 이씨가 천주교 구역 모임에 나갔다가 지금은 작고한 한 선배로부터 얻은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처세술이 인기였지만 왠지 이 얘기가 와 닿아 마음에 새겼었죠. 은퇴를 하면서 이제 다 끝이 났다 싶었는데 다시 한 번 의미를 되새겨 보니 이건 평생을 가는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일평생 이 다섯 가지는 꼭 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부담스러운 백세 인생이 아니라 나이듦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인생 2막에 들어선 이씨만의 비결이다. 30년 넘게 한국은행에서 일하면서 쌓은 전문적인 경제금융 지식과 노하우가 자연스레 은퇴 이후 다우리이엔씨협동조합 설립의 밑거름이 됐듯 말이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일의 큰 자산이라는 생각으로 우선 일에서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두뇌 활동에 좋아 치매 예방 효과도 있는 어학공부도 적극 추천한다.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까지 유창한 수준으로 구사하는 게 그의 목표다. “영어 공부를 위해 주로 ‘미드’ CSI 시리즈나 셜록 홈즈 영문판 소설을 보는데 중간에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매일 일본어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써보고, 일본어회화책을 들춰본다. 젊었을 때는 등산과 테니스를 주로 했지만 이제는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집 근처 둘레길을 혼자 걷는다. 특히 걸으면서 일본어 단어를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떠올리며 외우면 에너지도 두 배 이상 소모되는 것 같다고 이씨는 귀띔한다. 한 가지 아쉽지만 못 한 것은 악기를 다루는 일이다. 기타와 단소에 도전해봤지만 재능이 없어 노래를 듣고 흥얼거리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하루 한끼는 집밖서 해결이 원칙… 모임 추려내야
은퇴하면 생활리듬이 흐트러지기 쉬운 만큼 이씨는 규칙적인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의 하루 일과는 오전 6시면 시작된다. 눈을 뜨자마자 스트레칭과 체조로 몸을 깨운다. 하루 세끼 중 한 끼는 집 밖에서 해결하는 게 원칙이다. 그는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있듯이 오히려 은퇴를 하고 나니 한 동안은 주변에서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쏟아지는 연락과 모임으로 정신없이 바빴다”며 “스스로 시간 관리가 안 될 정도라면 모임이나 사회적 관계망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도 분기마다 모이는 대학 동기 모임과 매주 수요일 열리는 기도모임, 두 달에 한 번 개최하는 다우리이엔씨협동조합 이사회 정도로 모임을 추려냈다. 그 동안 일만하고 살았던 만큼 이 참에 일과 삶을 잘 조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래선지 이씨는 현재가 만족스럽다. 일부 퇴직자는 청년들처럼 일하고 싶어하거나 자신이 밀려났다는 설움을 겪는 경우도 있지만 이씨와는 먼 얘기다. “다시 생이 주어진다고 해도 젊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현재 나에 만족하면서 남은 미래를 건강하고, 가족과 화목하게, 이웃과의 유대를 강화하면서 살아가는 게 제 할 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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