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별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은 그를 아는 재계 인사들이 대부분 인정하고, 가끔은 혀를 내두를 만큼 과묵했던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대표적인 ‘침묵형 리더’ 중 한 명이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뒤 자신의 뜻을 짧고 간결하게 전했으며 사업적 결단의 순간 때도 그는 실무진의 의견을 먼저 경청했고 다 듣고 나서야 입을 열어 방향을 정했다고 전해진다.
박 명예회장 역시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라고 본인의 침묵을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곤 했다.
박 명예회장을 기억하는 그룹 내 인사들은 그의 ‘자상함’도 떠올린다. 언젠가 박 명예회장은 면접 시험장에서 입사 지원자에게 아버지의 직업을 물었다고 한다. ‘목수’라는 답변이 나오자 ‘고생하신 분이니 잘해드리세요’라며 등을 두드려줬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해당 지원자는 합격했고, 중견 간부로까지 성장하는 동안 그때 기억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하루는 박 명예회장이 직접 차를 몰고 회사로 출근한 일도 있었다. 운전기사가 아파서 결근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차장에서 이를 본 직원의 보고에 사무실은 당연히 한 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하지만 정작 박 명예회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히 집무실로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그 운전기사는 선대 때부터 일을 한 사람으로 박 명예회장과 인연도 40여 년 이상이었다.
박 명예회장의 야구 사랑도 각별하기로 유명하다. 워싱턴대학 유할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해 혼자 차를 몰고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을 찾아갈 정도였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OB베어스)을 창단했고, 어린이 회원 모집을 가장 먼저 시작했으며 인재 양성을 위한 2군도 제일 먼저 창단했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베어스 전지훈련장을 찾아 선수들 손을 일일이 맞잡았으며, 이전 시즌 기록을 줄줄이 외우며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2008년 4월 17일 77세 희수연 때 자녀들로부터 등번호 77번이 찍힌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받아 든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두산 직원들은 “세간의 평가보다 사람의 진심을 믿었고, 다른 이의 의견을 먼저 듣고 존중하던 ‘침묵의 거인’이셨으며 주변의 모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큰 어른’이셨다”고 고개를 숙였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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