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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랠프 에버내시(3.11)

입력
2019.03.1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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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의 멘토이자 동지 랠프 에버내시.
마틴 루터 킹의 멘토이자 동지 랠프 에버내시.

랠프 애버내시(Ralph D. Abernathy, 1926.3.11~1990.4.17)는 마틴 루터 킹 Jr.(1929~1968)의 멘토이자 친구였고, 미국 남부 흑인 시민권운동을 함께 이끈 동지였다. 남부크리스천지도자회의(SCLC)를 함께 조직했고, 함께 연단에 섰고, 함께 폭행 당했고, 함께 투옥되곤 했다. 연단의 킹을 소개한 것도 늘 그였다. 거의 평생, 킹의 사후에도, 킹의 그늘에 가려 지냈지만 그는 훗날의 인터뷰에서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단 한 번도 킹을 라이벌로 생각한 적 없다”고 말했다.

그는 킹 목사보다 3년 앞서 앨라배마 주 린든의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마렝고(Marengo) 카운티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최초의 흑인이었다고 한다. 2차대전에 참전한 뒤 ‘원호법(G.I. Bill)’ 혜택으로 앨라배마주립대(수학)에 입학했고, 2학년 때 학생위원회 의장으로서 학내 흑인 식당 차별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1951년 애틀란타대에서 사회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졸업 후 침례교회 목사로 몽고메리 시 최대 교회인 침례제일교회 목사가 됐다. 그가 인근 교회 목사로 부임한 킹을 만난 건 54년 무렵이었다. 이후 둘은 말 그대로 거의 붙어 다녔다.

킹 목사가 저격 당한 68년 4월에도 에버내시는 테네시 주 멤피스의 모텔 옆방에 묵었고, 그를 병원에 호송한 이도 그였다. 킹 사후 SCLC 의장을 이어받아 9년간 재직하며 흑인과 미국 원주민 인권 등을 위해 헌신했다.

두 차례 그가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었다. 80년 대선 직전 그는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남부 흑인들이 공화당을 무시하듯 민주당이 남부 흑인들을 (당연한 지지세력으로 여겨) 무시해온 데 대한 반발이었다. 그는 4년 뒤 레이건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89년 자서전(‘And the Walls Came Tumbling Down’)에서 킹 목사의 불륜행각 일부를 소개한 일로 또 한 차례 호된 비난을 샀다. 그가 밝힌 건 이미 알려진 경미한 두 건에 불과했지만, 제시 잭슨 목사를 비롯한 운동 진영의 스타들은 자신들이 떠받드는 영웅의 이미지에 흠집을 낸 그를 “중상모략가”라 비난하고 “뇌수술 때문에 인지능력이 손상된 듯하다”는 식의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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