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억할 오늘] 미국으로 도망친 스탈린의 막내딸 (3.6)

입력
2019.03.06 04:40
수정
2019.03.22 15:38
30면
0 0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 미국 대사관 통해 망명

망명 직후인 1967년의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
망명 직후인 1967년의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

이오시프 스탈린(1878~1953)의 2남 1녀 중 막내인 딸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Svetlana Alliluyeva, 1926~2011)가 1967년 3월 6일 인도 뉴델리의 미국 대사관을 통해 망명했다. 61년의 발레리노 누레예프 못지않게 주목받은 거물의 망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과 소련의 실상, 망명 과정을 기술한 2권의 자서전을 잇달아 내고 미국서 세 번째 결혼을 했다. 하지만 84년 모스크바로 건너가 미국과 CIA를 비난했고, 86년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와 말년을 보냈다. 그렇게 그는 냉전의 양극단을 오가며 말의 칼을 휘둘렀고 결과적으로 휘둘렸다. 말년의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어디를 가든, 미국이나 스위스, 인도나 호주에서도, 언제나 내 아버지의 정치범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탈린의 두 번째 아내 나데즈다 알릴루예바(Nadezhda Alliluyeva)가 낳은 1남 1녀 중 둘째였다. 스탈린은 외딸인 스베틀라나를 ‘어린 참새(little sparrow)’라 부르며 공식 석상에도 데리고 다녀,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스베틀라나’란 이름이 유행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가 6세이던 32년 자살했고, 첫사랑이던 유대인 영화감독은 아버지에 의해 시베리아 수용소에 끌려갔다. 문학을 공부하려던 꿈은 역시 스탈린의 강압으로 역사학으로 바뀌어야 했다. 동창이던 또 다른 유대인 남성과의 연애도 아버지는 폭력적으로 반대했으나, 어렵사리 45년 결혼해 아들(Iosif)을 낳고 2년 뒤 이혼했다. 49년 두 번째 결혼에서도 딸(Yekaterina)을 얻은 뒤 1년 만에 이혼했다. 52년 당 신년 행사장에서 스탈린이 스베틀라나의 머리채를 잡고 강제로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흐루쇼프의 회고록에 나온다. 60년대 한 인도 공산당 정치인과 사랑에 빠졌으나 당은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67년 동거하던 그가 숨진 뒤 시신을 옮기려고 뉴델리로 간 틈에 그는 망명했다.

망명 후인 1970년 그는 미국인 건축가(William Wesley Peters)와 결혼, 라나 피터스(Lana Peters)로 개명했고, 딸 하나(Olga)를 둔 뒤 73년 이혼했다. 서방에서도 그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영국과 스위스 호주 인도 등지를 떠돌며 살았고, 말년에는 가난했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