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한인 연구 김문환 칼럼니스트 인터뷰
세 시간을 꼼짝 못했다. 장윤원, 양칠성, 허영, 김만수, 유홍배…. 낯선 이름들이 쉴새 없이 등장하는데도 지루할 틈이 없다. 양칠성 연구의 9할을 꿰고 있다는 김문환(70) 칼럼니스트는 100년 인도네시아 한인역사 연구의 원조로 불린다. 그에게 양칠성을 묻는 건 당연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양칠성은 어떻게 연구했나.
“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 교수의 저서 ‘적도하의 조선인 반란’(1987년)에서 이름을 봤다. 책에 적힌 대로 무덤을 찾아갔다. 반둥 근처인 줄 알았는데 한참 외곽에 있더라. 양칠성 자료와 행적을 찾으려고 그가 활약했던 밀림과 은신처, 부대 근거지로 이어지던 투쟁 루트를 7번 다녀왔다. 양칠성 심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당시 생존자들도 찾아서 인터뷰했다. 거의 다 세상을 떠났다.”
-양칠성을 평가한다면.
“드러난 것만 놓고 보면 (인도네시아의) 독립 영웅이기도 하고, 친일파이기도 하다. 그런 행적과 증언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다만 그 시대, 나라 없는 설움에, 처량한 신세의 운명을 타고 난 희생자였던 것도 사실이다. 양칠성이 항일단체인 고려독립청년당 당원이라느니, 인도네시아 교과서에 나왔다느니 근거 없는 얘기들을 덧붙여서 미화하는 건 걱정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양칠성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아직 밝힐 부분이 남았나.
“허황되지만 타임머신 타고 가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 행적은 퍼즐로 맞출 수 있지만 사람 속은 들여다볼 수가 없잖아. 그래서 묻고 싶은 거다. 정체가 뭐냐고.”
김 칼럼니스트는 1968년 국내 기업으로 인도네시아에 처음 진출한 코데코에 1977년 말단 총무로 입사해 2002년까지 일했다. 이어 회사를 차렸지만 잘 풀리지 않아 2003년부터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정체성에 관한 글을 기고하면서 본격 연구에 나섰다. 3ㆍ1운동 자금 후원 혐의로 일경에게 쫓기다 1920년 한인으로는 처음 인도네시아에 정착한 독립운동망명객 장윤원의 잊혀진 삶도 그가 발굴했다.
자카르타=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