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노딜’로 드러난 북미 전략]
美, 북핵 동결이 이번 목표였지만 북은 영변 핵이면 충분하다 판단
북, 11개 제재 중 5개 해제라지만 美엔 핵심 제재 다 풀라는 의미
돌아보면 북미 정상 간 ‘하노이 담판’은 애초 성사되기 쉽지 않은 거래였다. 무엇보다 북한이 흥정하려 내놓은 물건인 ‘영변 핵 시설 영구 폐기’의 가격을 미국은 완전히 다르게 매겼다. 북한이 간절히 바라는 보상, 즉 ‘유엔 대북 제재 해제’의 시기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도 현격했다. 이번 합의로 북한 핵 무기가 더 늘지 않기를 미국은 바랐지만, 영변이면 일단 충분하지 않겠냐는 게 북한의 생각이었다.
지난달 28일 북미 정상회담 둘째 날 확대회담에서 합의문 도출을 위해 양측이 집중 논의한 교환 대상은 ‘영구적이고 검증된 영변 내 핵 물질 생산 시설 폐기’와 ‘북한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5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대북 경제 제재의 해제’였다. 영변 시설 폐기라는 상품을 미국에 팔러 나온 북한이 대가로 받고 싶다며 요구한 반대급부가 제재 일부 완화인데, 결과적으로 미국의 셈속을 완전히 잘못 헤아린 셈이 됐다.
영변 내 시설이 북한 핵 시설의 사실상 전부이고 자기들이 해제를 요구하는 5개 제재는 민수경제와 인민 생활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전체 11개 제재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게 북한의 설명이지만 미국의 인식은 판이했다. 일부(영변)의 비핵화로 전부에 가까운 보상(핵심 제재의 제거)을 얻어가려 한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었다. 특히 북한이 해제를 요구한 ‘5개 제재’는 2016년 4차 핵실험 이후 석탄, 석유, 수산물, 인력송출 등을 틀어 막아 북한을 비핵화 협상장으로 나오게 만든 특효약이었다고 미국은 받아들인다. 북한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상품의 가치는 과장하고 보상물의 가격은 폄하했다는 것이 미국의 인식이다.
제재 해제가 어느 단계 비핵화의 대가로 제공돼야 할 보상인지에 대한 양측의 견해 차도 상당했다. 들고 나온 협상 카드를 보면 북한은 제재 해제가 1단계인 ‘모라토리엄’(핵ㆍ미사일 시험 유예)과 짝패를 이루는 보상으로 여긴 듯하다. 반면 원칙적으로 미국이 상정 중인 제재 해제 시점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목표가 달성된 뒤다.
미국이 2단계인 ‘동결’(핵 무기 생산 중단) 이전에 제재 해제를 보상으로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3일 “미국은 북한이 만들어둔 핵 무기ㆍ물질 등을 완전히 폐기하는 최종 단계(3단계)인 ‘감축’ 시점까지 가장 큰 폭의 제재 해제를 남겨놓아야 북한을 그 지점까지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담판으로 도달하려는 지점도 같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미국의 목표는 ‘완전한 동결’이었던 것 같다. 비핵화 2단계까지 완결한다는 각오로 협상에 임한 것이다. 핵 무기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건 북한의 공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미국은 핵 물질ㆍ탄두ㆍ미사일 현황까지 포함된 포괄 리스트의 신고는 뒤로 미뤄도 영변 안은 물론 영변 밖 핵 물질 생산 시설과 핵 탄두 및 운반체(미사일) 제조 시설까지 가동 중단을 전제로 반드시 신고하라고 요구했을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협상 카드가 빨리 소진되기를 바라지 않는 북한의 마지노선은 영변 폐기였고 신고 없는 임의 폐기를 북한이 끝까지 고집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사소하지만 ‘시퀀싱’(순서 정하기)을 두고도 양측의 기 싸움이 벌어졌을 수 있다. 북한은 영변 시설 폐기가 핵ㆍ미사일 실험 중단 등 자신들이 먼저 한 선행 조치의 보상이 이뤄지고 난 뒤 가능한 추가 조치라고, 미국은 보상 받으려면 북한이 먼저 해야 할 행동이라고 각각 주장했을 확률이 높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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