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웨스틴조선 일식당 디저트
日 식재료 수소문ㆍ수차례 연구
입 소문에 10년간 20만개 판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일식당 ‘스시조’의 대표 메뉴는 어쩌면 스시가 아닌지도 모른다. 스시 코스 끝에 등장하는 디저트가 스시의 위상을 ‘위협’한다. 얇은 피(皮) 안에 특제 녹차아이스크림과 팥을 3대1의 비율로 채워 넣은, 지름 10㎝의 둥글넓적한 모나카. 2009년 1월 처음 선보인 뒤 올해로 10년을 맞은 국내 호텔업계 최장수 디저트로, 10년간 20만개가 팔렸다. 모나카를 먹으려고 스시조를 찾는 사람도 꽤 있을 정도라고 한다.
모나카는 찹쌀 피 안에 팥을 넣은 일본 전통 과자다. 모양이 희고 둥글어 ‘한가운데 달(모나카노쓰키ㆍ最中の月)’이라 부른 데서 나온 이름이다. 스시조의 모나카를 개발한 건 한석원 총괄 셰프다. 얼마 전 만난 한 셰프는 “일식에서 디저트는 과일, 모찌(찹쌀떡), 차 정도가 전부”라며 “양식의 케이크처럼 완성된 요리 같은, 포만감을 주는 디저트를 내고 싶었다”고 했다.
한 셰프는 1990년대 일본 유학시절 즐겨 먹은 단팥빵에서 영감을 얻었다. 달고 부드러운 팥은 디저트로 좋은 재료. 팥 양갱도 만들어보고, 크래커에 팥을 잼처럼 발라 먹어 보기도 했다. 결과는 실패. 양갱은 평범했고, 팥 크래커는 식감이 떨어졌다.
일본 도쿄 식품박람회에 나온 한 장의 피가 한 셰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팽팽한 종잇장처럼 얇지만 단단한 피였다. 수소문 끝에 도쿄에서 차로 5시간 이상 떨어진 가나자와(金澤)시의 200년 된 허름한 가게를 찾았다. 가나자와시는 일본의 3대 과자 생산지에 든다. 한 셰프는 “피를 한 장씩 손수 굽는 곳이었다”며 “계약을 맺자고 했다가 ‘피를 한국으로 보내면 운송에 한달 이상 걸려 눅눅해진다’는 이유로 어렵겠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한 셰프는 포기하지 않았다. 가나자와 가게 대표와 여러 차례 실험을 한 끝에 더 오래 구워 바삭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고, 독점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한 셰프는 “그야말로 피 싸움이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팥은 재래식으로 국내산 팥을 쑤는 서울의 한 방앗간에서 독점 공급받는다.
하지만 팥과 피만으로는 부족했다. 팥이 스시 생선의 비릿함을 잡아주긴 했지만,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은 없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한 셰프가 떠올린 것이 어릴 때 먹은 팥 아이스크림. 팥이 달기 때문에 아이스크림까지 달아선 안 됐다. 한 셰프는 겨자, 메주콩, 쑥, 된장, 레몬, 생강, 라임, 산초가루 등 팥의 단맛을 잡을 수 있는 식재료 수십 가지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봤다. 최종 선택된 건 녹차 아이스크림. 한 셰프는 “녹차의 씁쓰레한 맛이 팥의 단맛을 잡고, 그러면서도 맛이 입안에 오래 남지 않아 디저트로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6개월 만에 모나카가 탄생했다. 이내 입소문이 퍼졌고, 모나카를 따로 포장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래서 5년 전부터는 팥만 넣은 모나카를 포장용으로 판매한다. 아이스크림을 넣으면 금방 녹아 피의 바삭함을 살릴 수 없어서다. 미식가들 사이에선 ‘역시 스시조는 모나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모나카를 만든 장본인이라지만, 한 셰프는 그 말이 반갑기만 할까.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스시를 먹어야 후식인 모나카의 제 맛을 느낄 수 있지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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